[이슈탐구] 공정성과 일관성이 필요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피의사실공표죄의 문제점은?

- 인권을 보호하고 무죄추정 원칙을 지키겠다는 명목
- 법조계에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못한 성급한 제도 도입의 부작용이라는 지적 제기

형사 사건 공개를 지나치게 차단한 결과 국민의 알 권리 침해가 현실화할 것이라며 법조계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이에 따라 권력형 비리에 대한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견제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2019년부터 시작된 검찰개혁 이후 공인 범죄 실태는 '깜깜이' 상태에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현직 국회의원, 판검사, 3급 이상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에 대한 언론 보도가 2018년 대비 60.3% 감소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반면 공인 범죄를 제외한 일반 국민들의범죄에 대한 보도는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되고 있다.


◆ 피의사실공표죄란?
검찰,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취득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는 형법 126조에 규정된 조항으로 지난 1953년 제정되었지만, 그동안 관련 법 규정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없어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피의사실공표죄는 공인에 대한 수사로 인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쟁점이 되었다.

“일반 시민들에 대한 사건은 원칙적으로 비공개하는 게 맞지만, 공인의 경우 (판례상) 공개가 우선이다. 그런데 현재는 그런 원칙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공인에 대해선 국민의 알 권리가 훨씬 더 강조돼야 하는데 오히려 공인을 보호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2016년 당시 특검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피의사실 외의 수사 과정에 대하여 언론 브리핑을 실시할 수 있다'라는 최순실 특검법에 따라 수사 내용을 알렸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존재하지만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이라는 특별한 경우를 예외로 인정해 특검법에 따라 피의사실 내용을 언론에 발표한 것이다.

“2016년 국정농단 수사 때 최순실과 딸 정유라의 피의사실이나 수사 내용은 대거 노출됐다. 만약 그때 피의사실공표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끈 촛불혁명이 가능했을까 싶다”

◆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 당시 재조명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 당시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피의사실공표죄 적용에 대한 여론이 다시금 쟁점으로 떠올랐다. 서울중앙지검이 압수수색을 펼치고, TV조선은 부산대 교수의 컴퓨터에 담긴 내용을 뉴스 화면에 내보내었는데 여권에서는 검찰이 언론에 정보를 흘려준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형사사건 정보를 공개하는 기준과 원칙을 명확히 정하고 이 기준에 해당되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원칙적으로 사건 정보를 공개하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주요 형사 사건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


◆ 현실화된 깜깜이 수사
우려됐던 깜깜이 수사는 결국 현실화됐다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공인 범죄 사건의 존재와 수사 상황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려워지자 관련 보도 수가 급감한 것이다. 일부 사건이 뒤늦게 재판 과정에서 공개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수는 결코 많지 않았다.

“공소장은 당연히 공개하는 게 맞다. 현 정부나 여당 관련 사건은 공개하지 않고 정치와 무관한 강력 범죄는 마구 공개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공정하다.”

◆ 피의사실공표죄의 충돌 법익
형법의 피의사실공표죄에는 충돌하는 두 법익이 있다. 피의사실 공표로 피의자의 명예가 침해될 소지는 있지만, 그렇다고 공표행위 자체를 원천봉쇄하면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 국민의 알 권리는 형해화 될 우려가 있다.

권력자들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 '피의사실공표죄'를 방패막이로 삼아 수사 과정 자체를 감출 가능성이 높은데, 기소 전의 공표 행위를 모두 범죄로 한다면 유력 정치인이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은 경우 국민들은 그가 기소돼 법정에 나와서야 혐의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검찰이 '봐주기 수사'로 뇌물액을 축소하거나 아예 불기소하면 그의 범죄는 그대로 묻히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국내 신문 사건의 80%가 넘는 기사가 재판 전 단계의 기사라는 통계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논쟁점 중 언론자유의 측면에서도 국민 알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않으면 신문 사회면 사건 기사의 80%는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선정적이고 시시콜콜한 사건 기사까지 다룰 필요는 없겠지만, 피의사실공표죄를 법대로 적용할 경우 공적 기능을 갖는 언론의 표현의 자유, 즉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

◆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해
정보 공개 범위를 결정하려면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부처가 정보 공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건 공개는 민감한 사안으로 다양한 이해 당사자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법적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

◆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공소장 공개 여부는 특히 국민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공소장은 공문서이며, 법원에 제출한 시점부터 모두에게 공개된다. 국민이 기소 내용을 알아야 사법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되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 편향적 공개 결정은 안돼

전문가들은 수시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비공개할 수 있는 규정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며, 일관성과 공정성이 있는 시스템인지 살펴봐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심의위가 별도 기관의 감독을 받는지, 편향적인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지 등이 중요한 것이다. 정부 부처가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


▲ 본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외국의 경우는?


◆ 미국의 경우
미국의 법조인들은 형사사건 공개 여부를 법무부·검찰에서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규정을 지적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재량권'이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투명한 정보 공개를 위해선 수사를 담당하는 기관이 범죄정보 공개 여부를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경우 공소장이 비공개 처리되는 경우는 법원이 예외적으로 허락하는 경우인데, 공소장은 원칙적으로 미성년자 사건 등을 제외하고는 법원에 제출된 시점부터 공개되고 있다.

“정보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어야 한다는 게 미국 사법 체계의 전제이다. 기소 결정이 내려진 뒤부터는 투명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 특히 사건 공개 여부는 검찰과 전혀 관계없는 독립된 판사나 기관에 의해 정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다“

◆ 일본도 한국에 비해 범죄정보 공개 범위가 넓어
일본에서는 검찰이 언론에 형사사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있는데, 공소장과 관련한 보도 원칙이나 규정도 없다고 한다.

“일본에는 공소장 비공개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검찰이 의무적으로 공소장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언론에 관련 내용을 알리는 게 금지된 것도 아니다. 기소 전 수사 단계의 정보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 독일의 경우
한국의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과 관련해 사건 공개 여부의 키를 사실상 법무부나 검찰이 쥐고 있는 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사건 공개를 거부하는 결정은 확실하고 투명한 기준에 근거해야 하며, 독립 기관에 의해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사건 정보를 비공개하는 결정은 오직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독일 헌법은 특히 언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건 정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시스템을 가장 확실하게 금지할 것이다”

◆영국의 경우
영국에선 첫 공판 이후부터 기소 내용에 관한 구체적인 보도를 상당히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 단, 진행 중인 사법 절차를 방해하거나 유무죄 등에 대한 예단을 하도록 하는 상당한 위험이 있는 보도에 한해서만 법원모독죄로 처벌할 수 있을 뿐이다.

“영국에선 기소 후 피고인의 법정 답변에서 모든 사건의 기본 정보가 공개되며, 이에 대한 간략한 보도는 첫 공판 전부터 가능하다. 첫 공판 이후에는 개방적인 사법체계로 전환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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