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낮 12시 부산의 한 구청 민원실에는 ‘더 좋은 행정서비스 도입을 위해 법으로 보장된 법정 점심시간을 준수합니다’는 안내판이 적혀있었다. 해당 구청은 지난 1월부터 ‘점심시간 휴무제’를 도입했다. 기존 20명이서 순서대로 식사를 하면서 교대로 일했는데, 이제는 12시부터 1시까지 민원실을 아예 닫고 점심식사를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구청 민원 등 행정 업무를 보려면 일반 직장인들은 휴가를 써야한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지자체는 전자민원 사이트인 ‘정부 24’를 활용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인감증명처럼 직접 방문해서 처리해야 하는 서류가 여전히 꽤 존재한다.
공무원 점심시간 휴무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무원들은 “점심시간 쉬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하지만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휴무제가 자리 잡은 지자체도 있지만 겉도는 곳도 있다.
공무원 점심시간 휴무제는 점심시간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2017년 경남 고성군이 처음 시행한 이후 확산하고 있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50여개 지자체가 실시 중이다. 대구는 8개 구·군이 내년 4월 시범 시행을 예고했다. 반면 전공노는 내년 1월 전면 도입을 주장하며 '실력' 행사에 나섰다. 전공노 측은 '제대로 된 행정서비스 제공을 위해 내년부터 대구 8개 구·군에서는 점심시간에 근무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도심 곳곳에 걸었다. 지난 5일엔 내년 1월 도입을 주장하며 집회를 열었다.
반면 홍준표 대구시장은 부정적이다. 홍 시장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부 구·군에서 점심시간 민원실 셔터를 내리겠다고 결정한 것은 그 시간 짬을 내 민원을 보러 오는 시민을 곤란하게 만드는 잘못된 조치"라고 지적했다. 지난 2일에도 "교대근무나 유연근무라도 해서 민원실을 폐쇄하면 안 된다"고 했다.
법조타운을 낀 부산 연제구 거제1동 행정복지센터는 지난 2월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면 민원인 20여명이 찾아온다. 법원을 찾은 주민이 여러 가지 증명 발급을 위해 센터를 찾기 때문이다. 이에 복지센터는 직원 8명이 2명씩 교대로 30분간 일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전남은 순천·광양시, 곡성군 등 12개 시·군이 도입했다. 목포와 여수시도 내년 1월부터 동참할 예정이다. 나머지 시·군은 노인 인구가 많은 점 등을 들어 시행을 망설이고 있다. 무인민원발급기를 설치해도 어르신들이 사용하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도입한 울산 북구는 무인민원발급기 24대를 옥외에 설치했다. 북구청 관계자는 "시행 첫 한 달 동안에는 '왜 쉬느냐'는 등 불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전했다.
광주광역시도 지난해 7월 휴무제를 도입했다. 시행 초기엔 불편과 혼선의 연속이었다. 인감증명·여권발급·복지상담 등 창구에서만 가능한 민원 수요가 상당해서다. 광주 한 구청 민원실장은 “시행 초기 제도 불편 민원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엔 자리를 잡은 듯 불편하다는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 개정된 민원처리법 시행령에 ‘민원실 운영’ 조항을 신설했다. 내년 4월 시행을 앞둔 해당 조항은 민원실 운영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규정하면서도, “해당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행안부 민원제도과 관계자는 “민원 처리 여건이 각각 다른 지자체들이 조례 제정이란 법적 절차를 거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공무원·민원인의 여러 의견을 수렴하게 된다"며 "이 과정에서 점심시간 휴무제 민원실 문제가 효율적인 방향으로 자리 잡아갈 수 있다는 취지로 관련 조항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석환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점심시간 휴무제가 꼭 필요하다면 찬반 등 주장만 내세울 게 아니라 한 걸음씩 물러나 주민을 설득하는 등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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