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벨라루스에 핵무기 배치 선언... 한반도에도 영향 줄까

- 푸틴 “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 합의”... 냉전 후 30년 만에 첫 국외 핵무기 배치
- 미·러 신냉전 구도에 세계 핵균형 붕괴 ‘트리거’ 우려... 주한미군에도 재배치될 가능성

지난달 러시아가 미국과의 핵무기 통제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참여를 공식 중단하겠다고 밝힌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 핵균형을 무너트리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방국이자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를 하겠다고 선언하며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실제로 핵무기를 벨라루스에 배치할 경우 냉전 이후 약 30년 만에 러시아 핵무기가 국외에 배치되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 등 서방의 자유 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간의 신 냉전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핵 관련 이슈들은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영 TV인 러시아24와의 인터뷰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오랫동안 러시아에 전술핵 배치를 요청해왔다”며 “양국은 전술핵 배치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다른 국가에 전술핵 배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냉전 이후 처음이다.

이와 동시에 푸틴 대통령은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 등 핵미사일을 탑재하여 발사하는 운반체계는 이미 벨라루스에 제공된 상태인 것도 밝혔다. 현 벨라루스의 공군 항공기 10대가 해당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어 “오는 4월 3일부터 관련 훈련을 본격화하고, 늦어도 7월 1일까지는 벨라루스에 전술핵탄도 저장시설을 완공 할 것”이라며 “저장고 완공 이후에는 언제든 핵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핵 통제권은 러시아에게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핵확산금지협정을 준수한다는 가정 하에 미국과 똑같이 하기로 벨라루스와 합의했다”며 “핵무기를 벨라루스로 이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동맹국에 배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제 비핵화 의무를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미국은 이미 수십년간 전술핵무기를 동맹국에 배치해왔다”며 나토식 핵공유를 언급해 벨라루스 핵무기 배치를 정당화했다.

나토식 핵 공유란 미국이 유럽을 보호하기 위한 핵우산으로, 미국의 전술핵을 나토 회원국에 배치해 핵공격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독일·벨기에·네덜란드·이탈리아·터키 등 5개 나토 회원국 공군기지에 150~200기의 전술핵폭탄을 배치해 두고 있다. 평시에는 미국과 나토 회원국 국방장관으로 구성된 ‘핵계획그룹’(NPG)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유사시에는 미국이 통제권을 보유한다.

반면 러시아는 1996년 이후 자국 영토에만 핵무기를 보관·배치해왔다.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카자흐스탄 등 신생 독립 4개국에 핵무기가 배치됐으나 각국은 잇따라 러시아로 핵탄두를 옮기는 데 합의했고, 옛 소련 3개국에 배치됐던 핵무기는 1996년 러시아로 이전 완료됐다.

러시아 입장에선 전술핵 국외 배치만으로도 위협 수위를 높인 셈이고, 미국으로선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러시아의 강경한 대응에 관해 미국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 발표 직후 “러시아의 발표를 인지하고 있으며 그 의미를 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의 전략적 핵 태세를 조정할 이유도,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징후도 보지 못했다”며 “우리는 나토 동맹의 집단 방어에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러시아의 핵배치가 어떤 영항을 미치게 될까. 일단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자국 영토에 있는 핵무기로도 이미 광범위한 거리의 표적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탄두 위치를 조금 이동시킨다고 해서 핵위협이 많이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전황을 추적해온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 핵전쟁 위험이 적은 ‘정보 작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관련 전문가는 ““러시아는 국내에 핵 관련 무기와 부대가 많아 벨라루스 배치에 따른 군사적 효용은 없다”며 “나토를 위협하려는 푸틴의 게임 공작”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주요 우방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북한과 적대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에는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수중 핵어뢰 시험 등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맞서 주한미군의 전술핵 재배치나 한국의 독자 핵무장 요구가 번질 가능성이 있다.

26일 합동참모본부 등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수중 드론 형태의 핵어뢰 최종 개발시험에 성공했다. 북한이 은밀한 기습 공격이 가능한 수중 핵무기 개발 사실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북한은 이르면 연내 소형화한 핵탄두 성능 검증을 위한 제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지속적인 핵 위협을 제지할 수단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이후 2017년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최근 신냉전 고착화, 북중러 밀착 등으로 성과가 전무한 실정이다. 추가 대북 제재 역시 중러의 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실패했다.

북중러 한미일 대결 구도 심화 속에 러시아의 전술핵 전진 배치로 인한 핵균형 붕괴까지 가시화하면, 미군 전술핵 재배치 혹은 독자 핵무장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부정적이지만, 중러 핵위협이 심화할수록 미국 입장도 전향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중국의 경우에는 미국이 영국·호주와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를 통해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제공하는 것처럼 한국과 일본에 비슷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계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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