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의 50% 이상, 교수 30%가 주 80시간 초과근무... “과로 만연”
- “지속가능한 의료는 불가능하다” 현장은 ‘의료붕괴’ 위험 고조
지난 2022년 전공의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77.7시간이다. 대부분의 일반 회사원의 경우 주 40시간을 일하는 것을 감안하면 약 2배에 이르는 시간을 근무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법령에 따르면 4주 평균 64시간을 기준으로 이 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던 노동자가 근무 중 사망할 경우 ‘과로사’로 인정하고 있다. 즉, 모든 전공의들이 과로사 대상이라는 말과 같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전공의 2명 중 1명은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 2배가 넘는 주 80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고 있고, 최근에는 주 100시간 근무를 하던 전공의가 숨지는 등 수많은 전공의들이 비인간적인 업무강도에 수련포기를 넘어 삶의 의지마저 잃어버리고 있지만, 근무 환경은 쉽사리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최근 많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재검토 의사를 밝힌 주 69시간제 도입도 전공의들은 오히려 ‘우리부터 적용해달라’고 반겼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주 69시간은 전공의들에겐 꿈과 같은 근로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보건의료인력의 근무환경 개선을 주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안재근·정춘숙·신현영 의원과 대한전공의협의회·젊은의사협의체,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특별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2030 전공의 간담회’에 참석한 의사들은 이런 현실을 토로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1월 공개한 2022년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의 52.2%가 주당 근무 시간이 80시간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병원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60.3%까지 오르기도 했다. 레지던트 1년차 평균 주당 근무시간 중위값은 90시간에 이르며, 전공의 65.8%는 일주일에 최소 한번 이상은 24시간 연속 근무를 하고 있다.
과로가 일상이 되면서 전공의들이 받는 스트레스 인지율이 54.3%로 일반 인구(26.2%)보다 2배 이상이 높았고, 우울감 경험률(23.6%)의 차이는 4배에 육박한다. 전공의의 17.4%는 고된 업무강도로 인해 극단적 선택까지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이런 순간에도 같은 의사들조차 과로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상황에서 근무환경 개선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가톨릭의대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행렬 교수는 “의사들조차 동료 의사가 과로하는 것을 보고도 ‘이 정도는 해야 의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동자로서 의사의 건강권을 인식하고 과로를 당연하다고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어 “노동의 양은 물론 질도 문제다. 불규칙한 근무시간과 높은 직무 스트레스, 폭력 등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처럼 노동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의사는 현재 국가가 제시하는 과로사의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이미 많은 동료가 과로와 질병으로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의사 건강권을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대전협은 전공의법을 개정해 근무시간 감축 등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대전협 강민구 회장은 “24시간 초과 근무를 장기적으로 폐지하고 주 80시간 근무도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한다”며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전공의 주 60시간 근무 시범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또, 궁극적으로는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 마련과 전공의에 의존하는 진료체계를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회장은 “대학 교수가 외래 아닌 입원 진료를 담당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상급종합병원 의료 이용을 억제해 중증·응급질환 위주로 바꾸고 전담 전문의 인력 기준을 개선해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의 중심의 진료체계 구축 역시 쉬운 과제는 아니다. 그 전문의들도 과로로 탈진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젊은의사협의체 보건정책위원회 한석문 위원(서울대병원)은 지난 전공의법 도입 당시 전공의 업무량을 흡수한 전임의(펠로우)와 교수들이 “번아웃 상태에 빠졌다”면서 “다시 한 번 전공의 근무 시간을 단축했을 때 과연 이들이 그 부담을 짊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3월 고려의대 의학교육학교실이 발표한 연구에서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 34.1%가 번아웃 상태로 조사됐다. 번아웃으로 자살까지 생각한 교수도 8%나 됐다.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경우는 0.6%였다. 응답자 855명 30.4%가 주당 근무 시간이 80시간을 넘었다.
한 위원은 "교수들조차 더 이상 전공의 업무를 나눠질 수 없는 상황이다. 전공의 업무를 일차적으로 흡수하는 펠로우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없다"고 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김상걸 감사(칠곡경북대병원)은 의료전달체계 미비와 저수가 속에서 지난 수십 년간 '과로가 당연한 환경'을 방치한 결과 한국 의료가 붕괴 수준에 이르렀다고 했다.
김 감사는 "30년 전에는 노동 시간이 더 길었지만 견딜 수 있었다. 환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감당해야 할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의료전달체계 구축 실패로)일차 의료기관과 2차 병원이 필수 진료를 포기하면서 3차 병원 진료량이 몇 배 이상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조차 교수 1명이 입원 환자 100명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응급환자와 중환자까지 책임진다. 노동 강도는 갈수록 강해지고 견디지 못한 선배들이 빠진 자리에 남아 있는 의료진 과로는 더 심해지고 있다"며 "전공의 과로를 넘어 한국 의료가 붕괴 직전"이라고 했다.
이에 정부는 의사 건강권을 확보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전공의 대상 정책 지원 확대를 비롯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 이기욱 사무관은 "새로 발족한 전공의수련정책협의체와 수평위 등을 통해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수련 교육 내실화 방안을 논의하겠다. 의사 직역별 근무 실태와 인력 수급 전망을 종합해 근로 여건 개선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사무관은 "전공의 수련 교육에 대한 국가 지원 체계를 정립하고자 한다. 다만 전공의는 수련생과 근로자라는 이중 지위에 놓여 있는 만큼 균형적으로 접근하겠다"면서 "전공의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재 병원 환경에서 전공의 근무 제도를 변경하려면 인력 수급 같은 사전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전체적인 근로 여건 개선과 함께 이같은 논의가 충실히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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