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도 물폭탄 온다... ‘반지하’는 여전히 두렵다 “스스로 살아야 한다”

- 지난해 침수피해 컸던 신림동 등 일부 지역 매우 긴장
- 물막이판 설치 대상중 실제 설치율 35%에 그쳐... 주민들 “작년같이 비오면 의미 없어”
- 올초 규제전 착공 건물에 여전히 반지하 주택 건축중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는 지난해 8월, 기록적으로 쏟아진 집중호우와 태풍 힌남노 등으로 큰 침수 피해를 입었다. 당시 이 지역의 반지하 주택에서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이 물이 가득 들어차는 집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미 25일부터 제주를 시작으로 올 여름 첫 장맛비가 내렸고 올해에는 특히 장마 시즌에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예년보다 더 많은 비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반지하 주택 거주민들은 “비가 안 오기만을 바란다.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다”며 그저 재난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는 신림동 반지하 주택과 상가입구 곳곳에는 높이 40cm의 물막이판이 설치되어 있다. 실내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인 물막이판은 지난해 서울시가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했다. 그러나 24일 기준으로 서울시가 집계한 설치 현황에 따르면 물막이판 설치 대상으로 선정된 1만 5292가구 중 실제로 설치한 가구는 5358가구로 설치율이 35%에 그쳤다.

또, 물막이판을 설치하더라도 폭우가 내릴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폭우가 내렸을 때, 밖에서 물이 유입되기도 했지만 당시 집안의 하수구와 배수구 등에서 하수가 역류하면서 침수가 발생했기 때문에 밖에서 들어오는 물을 막는 것만으로는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상습 침수 지역에 위치한 건물 지상층에 거주하는 주민 A씨는 “작년에 우리 집 반지하 건물도 물이 차서 사는 사람들을 다 대피시키고 집주인이 물을 퍼냈다”면서 “하수구가 역류해서 물이 다 차는건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지 집주인들이 뭘 해줄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지난해 신림동 인근에 위치한 도림천이 범람하면서 하수구 역류가 더 극심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주민은 “물이 밑에서 차오르니까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 못 내려가서 역류가 되는 것”이라며 “높은 지대에서 낮은 지대로 물이 내려가는데 낮은 지대에서 막혀버리니 하수구에서 ‘뻥’ 하고 물이 올라왔다”고 했다. 서울시는 수해에 취약한 강남역과 광화문, 도림천 등 3곳에 우선적으로 빗물배수터널을 2027년까지 완공하겠다는 대책을 밝힌 바 있다.

비가 많이 내린다면 밖에서 들어오는 물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물막이판의 높이가 40cm인데 작년처럼 시간당 100mm씩 쏟아붓는 정도의 비가 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작년에도 하수구에서 물이 조금씩 올라온 데다 밖에서 들어오는 물 때문에 30분 만에 거의 60cm가 넘게 물이 찼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시간쯤 지나니 물이 (허리를 가리키며) 여기까지 차더라”며 “지하에 있는 집은 하수가 차오르기 때문에 집 안에서 물이 찬다. 물막이판을 설치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침수피해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은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다. 올해 2월 정부가 ‘기후변화에 따른 도시·주택 재해대응력 강화방안’을 발표하며 반지하를 포함한 지하주택의 신축을 원칙적으로는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해당 대책 발표 이전에 건축 허가를 받은 건물들은 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동산 관계자는 반지하가 계속 지어지는 이유에 대해 ‘건축 규제’와 ‘수익성’을 꼽았다. 관계자는 “일조권 제한이 있는 위치에 지어지는 건물의 경우 건물 높이를 올릴 수 없는 데다 이 건물들이 대부분 1층에 ‘필로티 주차장’을 만들어 사실상 지을 수 있는 층이 몇 층 안 돼 수익성이 나질 않는다”며 “건물 높이 제한을 풀어주거나 일조권 제한을 풀어줘야 하는데 그런 규제가 계속 이어지니 다들 수익을 위해 지하로 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조권 사선제한’규제는 뒷 집의 일조권 확보를 위해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규제로, 이 때문에 상층부로 올라가며 계단식 형태의 건물들이 등장했다.

반지하 주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반지하를 선택한다. 지난해 침수 피해로 인해 지상층의 선호도가 더욱 올라갔고, 이는 지상층 월세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올라간 지상층 월세는 누군가를 어쩔 수 없이 지하로 내몰고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중국 교포들이나 청년들도 좀 저렴하니까 반지하를 많이 찾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림동 일대를 기준으로 지상층은 1000만 원~3000만 원의 보증금에 월세 60만 원 수준이라면, 반지하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35만 원 수준으로 절반 이상 저렴하다. 게다가 침수에 대한 불안으로 지상층 수요가 늘며 지상층 원룸 월세는 작년에 비해 5% 가량 올랐다.

물론 이들에게 지난해 침수 피해는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아픔이자 불안이다. 지난해 침수피해를 겪었던 주민은 여전히 손쓸 수 없이 물이 들어찼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들은 폭우와 침수는 겪어 본 사람만이 아는 두려움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림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노(65) 씨도 작년 폭우로 물이 들이찬 지하 창고의 사진을 보여주며 “혹시라도 비가 와서 작년처럼 될까봐 겁이 난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다”며 “우리 같은 경우는 동사무소 자원봉사자들이 아니라면 물건을 치우지도 못했다. 올해는 일부러 창고에 저장량을 줄였다. 피해를 보면 보상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10~20%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노 씨는 지하 창고에 차올랐던 물을 따라 벽에 남게 된 노란 물 자국을 가리켰다. 페인트가 칠해졌던 벽은 물이 찼던 높이까지 페인트가 터서 일어났다. 창고 바닥에서부터 1m 30㎝에 가까운 높이까지 물이 찼었다는 증거였다.


노 씨는 물을 퍼내고 난 뒤에도 물이 마르는 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며 “(회복되기까지) 두세 달은 걸린다고 봐야지. 물건들 잔뜩 있었는데 다 버렸지 뭐. 지하라서 바람이 안 통하니까 큰 선풍기 이런 것들 틀어놓고. 스스로가 살아야지 누가 뭘 해주겠어. 여기 기계도 다 버렸어”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