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응급실 전공의 기소에 의료계 “이대로면 붕괴 넘어 파국”

- 의협 등 4개 의료단체, 수사중단 및 응급의료 대책 마련 촉구
- “언제까지 의료진·의료기관 책임으로 돌리나” 국가 책임 강조

대구에서 10대 중증외상 환자가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최초 진찰 후 전원 처리한 전공의가 피의자 조사를 받고 기소가 유력해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의료계가 경찰과 정부의 행보에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나서면서 오히려 필수의료 현장을 압박해 그나마 있던 의료진들마저 등떠밀고 있다는 것이다

▲ 출처 : 대한의사협회

대한의사협회와 대학응급의학회, 대학응급의학의사회, 대한전공의협의회는 3일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대구 응급의학과 전공의 피의자 조사에 따른 대한민국 응급의료 붕괴 위기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 피의자 조사를 즉각 중단하고 응급의료체계 개선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응급의료 체계 구조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이번 사건을 개별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대처가 잘못됐다는 듯 책임을 돌려 응급 현장이 동요되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빠르게 바로 잡지 않을 경우 응급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전공의 수사 중단과 함께 4개 단체가 요구한 사항은 ▼필수의료 분야 의료사고 의료진 면책 ▼응급의료 분야 지원으로 지역 완결적 최종치료 여건 마련 ▼응급의료전달체계 개편과 경증환자 이용 행태 개선 ▼정부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의료 현장 의견 반영 등이 있다.

의협 이필수 회장은 “해당 전공의는 진료 지침에 따라 최선의 판단을 했다”며 “그런데도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처사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래서 과연 누가 앞으로 응급의학과를 전공하겠나. 필수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응급의료가 이대로 붕괴하지 않을까 의료계가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응급의료학계에서는 응급의료 붕괴 우려를 넘어 ‘파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응급의료 현장은 지난 10년간 서서히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이제야 위로 올라온 것”이라먀 “이제 단순히 붕괴를 넘어 파국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응급의료 현장에서 모든 판단이 100% 옳을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현장에서 가장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배우고 수련하고 믿는 바대로 선택한다”며 “그 진료 행위는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행위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응급의학회 김원영 정책이사도 “사건 발생 후 복지부가 실사를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개인의 책임이 아닌 시스템적 폐해라고 결론을 내리고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며 “그런데도 전공의 개인에 대한 수사기관의 조사가 시작됏다. 수사 내용이 복지부와 큰 차이가 없다면 빠르게 결론을 내려야 현장 동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전공의는 본인이 해야 할 진료를 하기 싫거나 귀찮아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본인의 능력 안에서는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최종적으로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이를 심판한다면 현장 의료진은 너무나 힘들어진다”고 호소했다.

이에 의료계는 정부가 응급의료 현장의 혼란을 막고 필수의료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필수의료 의료진에 대한 면책을 넘어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하는 실질적인 ‘필수의료 국가책임제’의 도입을 제안했다. 현재 정부의 행보 자체가 의료기관 규제는 강화하면서 의료진 책임은 강제하는 ‘필수의료를 살리지 않고 필수의료 하지 말라고 떠니는 형세’라고 지적했다.

이형민 회장은 “응급의료 현장을 지키기 위해선 응급의학과 의사가 더 이상 그만두지 않아야 한다. 의사가 본인 소신대로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만이 필수의료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며 “교통사고 책임보험처럼 필수의료 책임보험 도입 등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지속적으로 건의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이제 이런 방안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응급현장 의료진은 멱살을 잡히고 뺨을 맞으며 자기를 치료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자가 소변을 누고 커튼에 불을 지르는 환경에서 일한다. 이런 환경부터 개선해달라”며 “응급실 과밀화 문제도 의료진이 아니라 정부가 해결할 일이다. 우리는 협조할 준비가 돼있는데 정부는 (어떻게 해야할지) 묻지를 않는다.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대전협 강민구 회장도 “지금 필수의료 문제가 체계의 실패라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재정을 어느정도 투입하겠다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필수의료 위기라고 1년째 이야기 하면 재정을 어느정도 투입하고 무엇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료와 중증의료 영역에서 최종 치료가 가능한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가 책임지고 나서지 않고 의료진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면 필수의료 분야 지원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필수 회장 역시 “필수의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밀접한 의료다. 국민이 언제든 필요할 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돼야 하고 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의료”라고 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필수의료 국가책임제 강화를 공약으로 했다. 필수의료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이번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란 법이 없다”며 “필수의료 수가를 정상화하고 시설·인력·장비를 충분히 보강해야 한다. 소신 진료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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