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의 붕괴 원인 ‘행위별수가제’, ‘결과 중심 가치기반지불제’로 전환해야”

- 진료량이 많을수록 수익 높은 ‘행위별수가제’, 의료전달체계 왜곡한다
- 가치기반의료 통해 환자 건강 향상, 의료재정 절감 가능

행위별수가제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각종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 결과를 중심으로 가치기반 지불제도의 전환을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진료량을 늘릴 때마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구조 탓에 진료량만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현 행위별수가제로 인해 대학병원 쏠림현상, 단절적 진료, 일차의료의 질 저하, 지역·필수의료 붕괴 위기 등으로 대변되는 의료전달체계 왜곡의 원인이라며 대안적 지불제도가 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5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특별위원회가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가치기반의료, 왜 중요한가?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제하의 의료현안 연속토론회에서 전문가패널들이 이같이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행위기반의료 지불보상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의료 과정에서 행위별로 보상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서울의대 오주환 교수는 “현 행위별수가제는 서비스 결과를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수가가 없거나 낮은 서비스는 제공될 동기가 미약하다”며 “따라서 행위별수가제는 의사들이 행위량을 증가하도록 유인되고, 의사 행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이로 인해 의사들은 필수의료와 예방의료서비스를 기피하고 3분 진료를 통해 최대한 많은 환자를 보게 돼 의료 질 저하의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곧 환자에게는 비용부담과 대기 시간 부담으로 이어지게 되고, 진료의 분절화와 파편화 그리고 의사와의 소통의 질 저하와 의사에 대한 불신 증가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진료량을 늘리려는 유인은 의사들의 공유자원인 건강보험 재원을 고갈시키려는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에 제안된 것이 가치기반의료이다.

가치기반의료 지불제도는 환자의 건강 결과(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지불제도로 지난 2011년 미국의 국민의료비 지출이 GDP 대비 16%가 넘어서자 기존 지불제도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구상된 지불제도다.

의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양을 가급적 늘려야 수익이 더 많이 생기는 지불제도 방식에서 환자의 건강을 향상하는 과정에 비용을 덜 쓰면 덜 쓸수록 절약한 비용을 의료 공급자에게 되돌려주는 방식을 취함에 따라 공유자원인 건강보험 재정을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 교수는 “결과를 향상하기 위한 가치기반의료는 의사들이 등록한 환자가 응급실 방문이나 입원을 해야 하는 건강 악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환자는 더 섬세한 관심을 받게 돼 더 좋고, 의사는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재정적으로 이득이 돼 좋았다”며 “미국은 가치기반의료를 실시한 3년 만에 외래 서비스 이용량과 의료재정도 절감하면서 재입원율은 감소하는 등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체계개선실 박춘선 실장 역시 “현재 지불제도는 측정되지 않는 행위는 보상하지 않는다. 합병증 예방을 위한 관리와 교육, 진료실의 충분한 환자 참여 및 중증·응급환자 적시 대응을 위한 대기와 당직 보상이 제한적이다. 또, 수술합병증으로 인한 재수술은 보상하고 재수술을 줄였을 때에는 보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 울타리를 벗어난 서비스 혹은 의료기관 간 서비스는 보상하지 않는다. 또, 의료시스템의 접근성, 질, 직정부담 등 성과의 균형적 발전을 보상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외래 진료 횟수나 재원 일수 등 의료 이용은 많으나 수요가 감소하는 소아중증진료 접근성은 낮아지고, 서울 대형병원 의료 질은 우수하나 환자 쏠림으로 지역 완결적 의료제공이 제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박 실장도 공급자 간 조정, 의료 질 및 건강결과, 효율성 향상을 목표로 전통적 단일 수가 기반 지불방식에서 대인적 가치기반 진료비 지불제도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발제에 한국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은 “가치기반 의료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 우선적으로 지불하고 과정을 사지 않고 결과를 구매하는 것은 보험자가 지속 가능한 의료보험 재정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의료소비자가 의료 이용에 있어 합리적 태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우봉식 원장은 “가치를 기반으로하는 의료체계를 변화시킬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한국은 ‘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며 “보다 다양하고 심도 싶은 논의와 시범사업 등 충분한 준비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정과제에 포함된 공공정책수가를 현재 우리의 보건의료 분야, 필수의료 분야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충분한 재정투입을 통해 의료의 공익적 기능, 의료기관의 공익적 기능에 충분히 지원해 국민의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 것이 가치기반 의료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의료계 전문가들의 논의에 보건복지부 의료보장혁신과 강준 과장은 “가치기반 의료제도는 국민의 건강 이슈, 복지 이슈를 해결하려는 귀중한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30년이 된 행위별수가제가 지속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성은 분명 있다. 10년 전에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지만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가치기반의료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어 “현재 복지부는 가치기반의료를 시범사업형태로 3가지 진행하고 있다.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 병원간 협력으로 지역 내 응급심뇌혈관질환 전달체계개편 시범사업, 어린이병원 사후보상 시범사업 등 통해 근거를 축적해 국민에게 가치기반의료를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지불제도 개편 시범사업이 근거를 축적해서 본사업으로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한 해당 시범사업은 건강보험 재정을 쓰고 있는데 향후 건정심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시범사업에 거버넌스를 갖추는 등 노력을 기울여 정부가 최대한 지원하고 현장에서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