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료계 반대’ 차등 수가 강행 추진

정지훈
발행 2023-07-11 11:17

- 의협 중심 의료계 ‘재정순증’ 요구에는 소극적인 복지부
- 수가 불균형부터 해소, 소아진찰가산은 추가 논의
- 검체·기능·영상 ‘동결’... 수술·처치는 ‘인상’

필수의료 붕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건복지부가 기존 행위별수가제도에서 5개 의료영역으로 구분해 차등해 인상하는 대책을 고려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 등 공급자 측의 거센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

2024년 의원급 환산지수 1.6% 인상분 중 검체, 기능, 영상검사, 수술, 처치 등 5개의 의료행위로 나누어 이미 원가보상률이 100%를 상회하는 검체와 기능, 영상검사의 환산지수는 동결하고, 원가 이하로 저평가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수술과 처치 영역만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복지부는 소아과 오픈런, 소아 환자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으로 사회적 관심이 큰 소청과를 살리기 위해 780억 원의 재원을 의원급 소아진찰 가산에 투입하기로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의사 단체 등 공급자 측의 강력한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건정심에서도 격렬한 토론 끝에 행위별 수가 인상률에 차이만 둔다는 큰 방향성에만 합의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타 전문과의 수가를 빼앗아 조금이라도 이익을 취하고픈 생각이 없음을 밝히고 이 부당한 조치에 대해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의사 동료들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그 어떠한 제한도 수용할 생각이 없다”고 반발한 바 있다.

소청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복지부는 이런 정책을 펼치기 전에 보건복지부 장차관, 실국장 월급을 깎아서 밤샘 근무하는 주무관, 사무관 월급을 올려라. 복지부 고위층이 먼저 월급 반납으로 솔선수범을 해야한다”며 비꼬았다.

대한개원의협의회 역시 정부의 이런 방침에 격렬하게 반대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

대개협 김동석 회장은 “복지부는 이미 5월 수가협상 때부터 이같은 내용을 제안하고 고집했다. 필수의료의 몰락으로 국민 건강권이 위태로워진 이 상횡에서도 정부는 상대가치가 총점 고정된 상태에서 재정 순증없이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겠다는 것이다”라며 “원가 보전을 하고 잇으면 그 이상으로 수익이 나오는 구조가 정상인데 원가만큼 보상되고 있는 검체와 검사 영역을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문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가 이상의 수가가 있으면 이를 지켜주고, 원가 이후의 수가들을 모두 원가 이상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경제논리인데 이러한 발상은 좀처럼 이해가 안 간다”며 “필수의료라고 하는 산부인과의사로서도 이 같은 방식의 필수의료 살리기는 반대한다”고 명확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처럼 의료계는 해당 정책이 과별, 직역별로 의료계 분열을 조장하고, 재정 투입 없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도 원칙적으로 재정 순증 없이 환산지수 조정을 통한 필수의료 지원에 반대하고 있다.

의협 김봉천 부회장은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수가협상 때부터 이미 이 같은 방향을 설정하고 고수하고 있다. 복지부의 의지가 굉장히 확고하다”며 “상대가치점수를 변경하는 방식이 아닌 환산지수로 재원을 만들어 부족한 부분에 투입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의료계와 입장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복지부도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의료계와 상의해 접점을 찾아보겠다고 하니 상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의협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재정 순증을 요청하면서 저평과된 부분에 수가를 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하지만 복지부는 코로나19에 많은 재정이 투입됐고,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보험료 수입이 줄어들 것을 예상해서 인지 소극적인 상황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의협 김 부회장의 말처럼 복지부는 차등 수가 강행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복지부 손호준 보험정책과장은 "현재의 수가 형태는 매년 환산지수를 일률적으로 올리는 방식이다. 그렇다보니 유형별로 수가가 불균형한 상태에서 어떤 유형은 과보상하고, 어떤 유형은 저보상되고 있다. 이러한 형태가 그대로 가게 되면 불균형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손 과장은 "원래는 상대가치를 조정해야 하는데, 상대가치 조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쉽지 않다. 그래서 복지부는 환산지수를 활용해 현재의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 부분은 재정운영위원회에서도 권고됐던 부분이기 때문에 건정심에서 의료계에 제안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다만 손 과장은 "환산지수 일정 부분을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 소아진료, 필수의료에 더 보상할지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정부의 필수의료 강화 정책이 재정 순증 없이 진행된다고 비판하는 데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손 과장은 "재정을 순증해야 할 부분은 별도로 재정을 투입해 보상할 것이다. 환산지수를 이용한 부분은 현재 과보상하고 있는 분야와 저보상된 분야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추진되는 정책으로, 현재의 과 보상된 분야를 그대로 계속 올려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