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명조끼 안 입혔냐” 오열하며 항의한 부모... 해병대 “현장 지휘관 독단 판단”

경북 예천에서 폭우로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작업 중 급류에 휩쓸리며 실종됐던 A(20)일병이 결국 14시간 만에 사망한 채로 발견된 가운데 A일병이 왜 사고 당시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는 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해병대가 기본적인 안전장구도 지급하지 않은 채로 병사들을 무리하게 급류로 보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 출처 : 경북소방본부

19일 군·경·소방 합동 수색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8분쯤 경북119특수대응단은 경북 예천군 호명면 월포리 고평대교 하류 400m 지점에서 실종된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의 A(20)일병을 발견했다. 당시 A일병은 물 밑에 엎드린 상태로 발견됐으며, 현재는 해병대에 인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의 A일병은 이날 오전 9시 10분쯤부터 예천군 호명면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수색 임무를 수행했다. A일병을 포함한 6명의 해병대원은 내성천에서 서로 손을 잡은 채 일렬로 줄지어 한걸음씩 나아가며 실종자를 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천의 물살이 워낙 거셌고, 며칠 째 이어진 집중호우로 강바닥에 퇴적물들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면서 대열이 흐트러졌고, 하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한 대원들이 물 밖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성천을 빠져나오던 A일병을 비롯해 해병대원 3명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2명의 해병대원은 수영을 통해 빠져나왔으나 A일병은 20m를 떠내려가다 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보문교 일대 내성천에 투입된 해병대 장병들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인간띠’를 만들어 강바닥을 수색했다. 사고 당시 보문교 부근에는 해병대원 39명이 이 같은 방식으로 수색하고 있었고 이들은 4m정도의 거리를 두고 9명씩 짝을 이뤄 장화를 신고 수색 작전을 벌였다.

수일간 내린 많은 양의 비로 내성천의 수위가 상승해있었고, 유속도 빨랐으며 바닥이 보이지 않아 위험한 환경이었지만 이들에게 제공된 구호 장비는 일체 없었다. 같은 실종 작전에 투입된 경찰과 소방당국은 수색 구조를 위해 구명보트와 드론, 구조견을 비롯해 안전모와 구명조끼, 로프, 탐침봉, 구명환 등 개인 구호물품이 지급된 것과 상반된다.

이와 관련해 해병대 1사단 측은 “물의 깊이가 그렇게 깊지 않았고 소방 당국과 협의가 이뤄진 하천간 도보 수색 활동이었다”며 “유속이 낮은 상태에서 지반이 갑작스럽게 붕괴할 줄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아들의 믿을 수 없는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현장을 찾은 A일병의 부모는 이런 설명을 듣고 오열했다. A일병의 아버지는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왔고, 물살이 셌는데 왜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았으냐”며 소속 중대장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이어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싸냐. 왜 구명조끼를 이렇게 물살이 얼마나 센데 (입히지 않았느냐), 이거 살인이 아니냐, 살인”이라며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는 군대가 어디 있느냐. 기본도 안 지키니까 (이런 사고가 나는거 아니냐)”고 오열했다.

A일병의 어머니 역시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그렇게 해병대에 가고 싶어해 가지말라고도 못했는데 어디있느냐 내 아들”이라며 주저앉았다.

한편, 해병대 내부 규정상 수상에서 움직이는 함정이나 고무보트 등을 운용하는 인력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게 돼 있지만 강이나 하천변에서 탐침봉으로 수색하는 인원들에 대한 별도 의무 규정은 없다고 해병대 측은 주장했다.

이번 작전 과정에 명확하게 들어맞는 명시적인 규정은 존재하지 않고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하도록 돼 있다는 게 해병대 측 주장이다. 해당 부대는 전날에도 같은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수해 주민의 시신을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은 전날보다 날씨가 좋고 유속이 느려 보여서 현장 지휘관이 구명조끼에 대한 필요성을 간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해병대는 자체 수사단과 안전단을 현장에 파견해 안전 대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 경위를 파악해 안전조치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구명조끼 착용을 지시하지 않은 현장 지휘관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꼬리자르기식 결론을 내린다면 사태 재발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적어도 수해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이라면 헬멧과 구명조끼 등 안전 장비 착용은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군인권센터는 “해병대 병사 실종은 무리한 임무 투입으로 인한 인재”라며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군 장병이 대민지원 임무에 투입될 수 있지만, 하천에 직접 들어가 실종자를 수색하는 임무를 경험이 없는 일반 장병에게 맡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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