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본인확인, 내년 5월 시행 앞두고 계획대로 진행 중... 의료계 “책임전가”

- 내년 5월부터 의료기관에 환자 본인확인 의무 부여... 위반시 과태료 부과
- 의료계, 진료거부로 인한 환자 민원 우려... QR 등 추가설비 비용 문제도
- “수진자 조회는 공단의 의무... 수가 마련하고 시범운영해 보완해가야”

정부와 복지부가 의료기관이 환자의 신분증 등을 통해 본인확인 하도록 의무화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마련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내년 5월 시행이 확정된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이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현재도 진료 거부로 인한 무분별한 민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환자의 본인 의무까지 떠안을 경우 사실상 이중규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3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내년 5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본격적인 법안 마무리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당 개정안은 의료기관에게 내원 환자의 건강보험증과 신분증 등을 활용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다 적발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나 징수금이 의료기관에 부과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명의대여 및 도용으로 인한 건강보험재정 누수를 막겠다는 입장으로, 공단 측인 본인확인 절차를 간편화하기 위해 QR코드 시스템을 구축하고, 병·의원 10개소를 대상으로 ‘모바일 건강보험증 앱을 통한 본인확인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미 내년 5월 시행이 확정된 가운데 의료계와 안내 방법 및 본인확인 예외 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의료계는 법안이 확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법안 자체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수진자 관리는 공단과 정부의 의무임에도 이를 의료기관에 떠넘기면서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까지 부과하는 행태는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일선 현장에서도 본인확인 절차 과정에서 발생할 환자와의 갈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아파서 고통받다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본인확인부터 요구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고,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돌려보낼 경우 진료 거부 등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충남 내포신도시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9세 아이가 보호자 없이 혼자 내원하자 증상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듣기 어렵다고 판단해 보호자와 대동해 다시 방문할 것을 권유했다가 진료 거부로 민원을 받은 일이 있기도 했다.

한 전문의는 “미성년자가 혼자 와서 되돌려보냈다고 민원을 받는 세상인데 다 큰 성인도 신분증이 없다고 돌아가라는 얘기를 아픈 환자들이 순순히 납득할지 의문”이라며 “환자들이 반발할 것이 뻔한데 이를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의료기관의 몫이다. 스마트폰이나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은 노년층 환자도 수없이 많은데 이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도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한 것은 환자인데 의료기관이 이를 왜 책임지고 처벌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산부인과의 경우 보호자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문제로 병·의원에 내원하는 미성년자도 있는데 이들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협회 차원에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적어도 내년 5월 전면 시행이 아닌 시범 운영기간을 두면서 나타나는 부작용 등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도의 경제성 효과도 지적받고 있다. 환자의 본인확인으로 얼마만큼의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예상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이 비용이 전국 의료기관이 관련 설비나 인력을 설치 및 유지하는 비용보다는 많아야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규제일변도인 정부 정책이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지 의심된다. 아무리 치안을 강화한다고 해도 범죄 발생 자체를 다 막을 순 없다”며 “본인확인을 강화해도 어떻게든 허점을 찾는 이들이 나올 수 있는데 현장에 규제만 더해져 오히려 부작용이 심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게 된다면 실익없이 전국적으로 관련 설비를 설치하는 엄청난 비용만 낭비하게 되는 것”이라며 “아직 고시가 어떻게 될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시범기간을 두고 국민 반응과 불편을 파악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서는 환자 본인확인을 위해 설치될 설비나 추가될 인력이 불가피한 만큼 이에 대한 의료기관에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서울특별시의사회 이태연 보험부회장은 "수진자 관리는 공단의 가장 큰 의무인데 이를 일방적으로 의료기관에 떠넘기고 책임까지 지우는 꼴"이라며 "QR코드로 확인하면 편하다고 해도, 관련 장비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드는데 이를 어찌할 것인지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는 정부가 본인들이 할 일을 하지 않고 일선 현장에 전가하는 행위로 시행해야겠다면 수가라도 보장해야 한다"며 "재정 누수를 막겠다면 국민 계도부터 하는 것이 순서"라고 강조했다.

또한 응급환자가 밀려들어오는 상황 속에 환자 본인확인이 어려운 응급실 현장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본인확인 의무 자체는 응급실이 아닌 의료기관에 부여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응급환자는 본인확인에 어려움이 있어 지금도 경찰이나 소방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잦다"며 "응급환자 본인확인은 병원 전 단계에서 해결돼야 하고 정부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이 시행된다고 해도 응급실 내부에서 직접 신원 확인을 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아직 응급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확실하지 않아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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