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검거 당시 얼굴 그대로 공개한 경찰, 왜 지금은?

인권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피해자에도 가해자에도 적용되지만 그 누구도 범죄를 가해할만한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인권 논리를 앞세워 권리 남용에 공적인 가치는 이미 무너졋으며 공권력은 종잇장과 다름이 없어진 지 오래다. 사회질서를 올바르게 유지하면서도 약자를 보호할 균형잡힌 대안 마련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다친 ‘분당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원종(22)의 신상정보와 사진이 공개됐다. 그러나 최씨가 머그샷 촬영을 거부했고, 이를 강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흉악범 신상 공개의 실효성이 있느냐는 비판이 지적되고 있다.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범죄자의 신상 정보와 관련한 사회적인 논란이 크게 일지는 않았다. 당시 주요 범죄 피의자의 실명은 물론 사진, 심지어는 집 주소 등 개인정보까지 상세하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1986년 발생한 서진 룸살롱 사건이나 1994년 지존파 사건 등 과거 강력 범죄의 피의자들의 신상이 고스란히 TV를 통해 공개됐다.

현재처럼 신상 공개 여부를 심의를 거쳐 공개하는 신상공개 제도는 2010년 4월 도입됐다. 이 때 머그샷 등 사진을 피의자가 고르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마련됐다. 이 후 여러 범죄자들이 심의를 거쳐 신상이 공개되어 왔으나 피의자가 검거된 이후 찍는 머그샷을 공개하는 것을 수용한 범죄자는 2021년 사귀던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들을 살해한 이준석이 유일하다.

해외에서는 유죄가 확실시되는 강력 범죄의 경우 가해자의 인권보다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를 우선시해 신상 공개를 하고 있다. 미국은 정보자유법에 따라 체포 과정부터 공개하기도 하고, 형이 확정되기 전 머그샷도 공개한다. 때문에 마이클 잭슨, 키아누 리브스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머그샷 공개도 이뤄지고 있고, 인터넷에선 1977년 교통법규 위반으로 체포됐던 빌 게이츠의 머그샷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머그샷 공개를 강제하진 않지만 실명 보도 원칙을 중시해 보도할만한 강력범죄의 경우 얼굴과 실명을 그대로 공개한다. 또, 지난 2006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에서 갓난아이를 냉장고에 유기한 혐의로 체포된 프랑스인 부부도 국내에서는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프랑스에서는 공개됐다.

한국에서 범죄자의 신상공개가 해외에 비해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이유는 1998년 대법원 판결이 배경이 된다. 앞서 언론 보도로 인해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가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 언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미 범죄자의 낙인이 찍혔다는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공인이 아니라면 피의자의 산상 보도는 공공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 직후 피의자의 신상 공개와 보도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이 때문에 유영철, 정남규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연쇄살인범들의 신상마저 즉각 공개되지 않아 그 때마다 논란이 일었다.

다시 일부라도 신상 공개를 하게 된 것은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일부 언론이 범죄의 잔인성 등을 이유로 신상 공개를 해 사회적 논의가 이어졌다. 이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 규정을 만들어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에만 한해 신상 공개를 하도록 명시했다.

현재도 피의자 신상공개가 가능한 범죄는 특정 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과 성폭력 처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죄로 국한되어 있다.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남’으로 불리는 이씨(30)의 경우에도 신상공개 여론이 높았으나 수사 단계부터 중상해 혐의가 적용된 탓에 신상공개 대상이 아니었다.

뒤늦게 피의자 DNA 등 추가 증거가 발견돼 강간미수살인혐의로 혐의가 변경되어 혐의가 재판 도중 변경되었으나 피의자 신분이 아닌 이미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라는 이유로 검찰이 이씨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에 피해자를 돕던 한 유튜버가 이씨의 신상을 공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현행법에 따라 피의자 신상 공개를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언제 찍은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또 피의자가 법원을 출석하는 과정에서 마스크,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자 하면 경찰이 이를 강제로 공개할 권한은 없다. 이 때문에 경찰이 공개한 피의자 사진이 최근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경우가 많아 관련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특강법이 규정한 피의자 신상 공개의 목적이 국민 알권리와 피의자의 재범 방지, 범죄 예방인 만큼 공개 범위를 지금보다 넓히고 규정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매우 높다.

이번 국회에도 신상공개가 가능한 범죄의 종류를 확대하고 현재 인상착의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특강법 개정안이 7건 발의됐다. 피의자 최신 사진을 공개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촬영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지만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인권단체와 법조계 등의 반발을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형 형사사건에서 국가가 피해자 편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나타내주기 위해서는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들이 통과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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