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사회 “위험 방지 위함인데 위험해져야 입원 가능한 모순”

- 정신건강의사회, 정신질환 환자 입원 및 치료에 국가 책임 강조
- “자타해까지 속수무책... 보호자에만 책임 전가 멈춰야”
- “탈원화? 퇴원 후에도 국가 책임 치료 지속 체계, 환자 재활 인프라도 수반돼야”

최근 무차별적으로 발생하는 칼부림 사건이나 흉악 범죄가 이어지고 있고, 가해자 일부가 정신질환자로 치료받은 이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신질환 치료 및 관리 체계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에서 정신질환자 환자들의 입원과 치료 과정에서 보호의무자에게만 지나친 책임이 쥐어지고 있으며,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16일 성명서를 통해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범죄 피의자로 수감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들에 대한 편견이 더욱 커지고, 정작 치료가 필요한 분들이 치료에서 더욱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인권 보호와 병동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성급하게 시행됐던 제도들이 도리어 정신질환 조기 발견과 치료를 방해하고 있다”며 “퇴원 환자들의 재활 및 거주 인프라가 미흡한 상태에서 추진된 탈원화 정책은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한 채 사회 곳곳에 방치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입원 치료는 정신적 증상이 악화하기 전 위험을 미리 방지하기 위함인데, 자타해 위험이 확인이 되어야 이송과 입원이 가능한 현 제도는 중대한 모순과 한계가 있다”며 “현 입원제도로는 자타해 위험이 명확하지 않은 조기 정신증 상태 환자들이 증상이 악화되어 위험해지기 전까진 제대로 입원 치료 받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병식이 없거나 현실적 판단 능력이 저하된 환자들에게는 치료 받을 권리가 곧 인권이며, 그 권리를 박탈하고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무책임하고 공허한 구호’라고도 주장했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환자 스스로가 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에 조기에 적극적인 치료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며 “급성기 증상이 입원과 약물치료로 완화되는 과정에서 환자 스스로도 병을 인식해 자발적으로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급성기 치료를 위한 입원 병동 지원, 사회 즉각 복귀가 어려운 만성질환자의 병내 사회복귀 재활프로그램 인프라 지원,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 퇴원 후 치료 지속을 위한 외래 치료 명령 제도 수정 및 보완 등을 요구했다.

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와 가족 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부양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보호의무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환자의 돌봄, 치료, 입원 등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가족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지속적인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정신의학과의사회는 “정신질환 환자의 가족들은 신체적, 정서적 위험에 처하거나, 환자 돌봄을 위해 자신의 생계나 생활을 희생해야 하는 등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사회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적절한 조기치료 역시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환자의 응급 후송과 비자의 입원 결정 과정, 외래 통합 치료 부담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일 없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탈원화는 무작정 병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벗어난 환자들의 재활과 거주 등 현실적인 문제에 세밀한 준비와 구체적 계획이 필요한 일”이라며 “국가는 환자의 돌봄과 치료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지 말고, 발견과 이송, 재활과 거주에 이르는 인프라 구축을 위한 법과 제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