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기재부의 깡통전세 대책, 여전히 전세사기에 노출된 세입자

정부가 올초 범정부 합동으로 당시 성행하던 전세사기 대책을 내놓으면서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높은 ‘깡통전세’에 대출을 차단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위반한 대출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산하의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내부 규정을 바꿔 깡통 전세에 대한 대출 보증을 차단한 반면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주택금융공사(HF)는 ‘전세금 2억 원 이하’에 대해서는 대출 보증을 허용하는 관련 규정을 바꾸지 않았다. 두 부처간의 상이한 정책으로 세입자는 여전히 전세사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에서는 지난달 매매가가 1억 6000만 원인 빌라가 매매가보다도 4000만 원이 더 높은 2억 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고, 보증을 통해 대출이 실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물건을 중개한 공인중계사 A씨는 “빌라를 사들인 B씨가 2억 원짜리 전세대출 계약서 작성을 요구해 거절했었다”면서 “결국 다른 중개사를 통해 전세계약서가 작성됐고 2억 원의 전세대출이 실행됐다”고 말했다.

HF의 전세대출 보증상품 안내문을 살펴보면 HF는 2억 원 이하의 주택의 경우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넘어도 전세대출을 보증해주고 있다. 주택 가격이나 임대인에 대한 심사 없이 임차인의 대출 상환 능력만 평가하고 있다.

주금공 관계자도 이에 대해 “2억 원 이하의 주택은 임차인이 상환 능력만 있다면 전세가율에 상관 없이 대출 보증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최근 발생한 전세사기 문제는 대부분 빌라의 높은 전세가율과 임대인의 전세금 미반환 등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주금공은 임대인과 주택 가격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반번 HUG의 경우 전셋값이 주택 공시가격의 126% 이하일 때만 전세대출을 보증한다. 통상 실제 매매가와 공시가가 30% 가까이 차이나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전셋값이 매매값을 넘는 ‘깡통주택’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정부는 전세사기 대책으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율 비율)을 90% 아래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전세사기 주범으로 꼽혔던 속칭 ‘빌라왕’ 주택의 평균 전세가율은 98%에 달했다.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 2년 사이 집값이 2%만 떨어져도 깡통주택이 된다.

정부가 전세가율을 낮추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방안은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요건 강화이다. 전세가율이 90% 이하인 주택만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주택가격 산정 방식도 기존 공시 가격에서 150%에서 140%로 낮췄다. 전세가율 90%까지 적용한다면 실제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전세가격은 공시가격의 126%까지다.

HUG는 보증금 반환보증을 가입해야만 전세대출을 보증해주고 있다. 반환보증 요건만 강화해도 실제 대출조건까지 강화되는 구조이다. 하지만 HF는 전세계약서를 기준으로 임차인의 상환 능력을 평가해 전세대출을 보증해준 뒤 임차인이 원할 경우에만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하도록 했다. 반환보증 가입 요건이 강화돼도 실제 전세대출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게다가 감정가 부풀리기를 통한 깡통전세 대출 역시 여전히 가능하다. 두 기관 모두 공시가격이 없는 신축빌라에 대해 감정가의 90%까지 전세대출을 보증해준다. HUG는 감정가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지정된 감정평가 법인에서만 감정받도록 지정하고 있지만 HUG가 지정한 곳에서도 전세사기에 가담한 감정평가사가 나오는 등 우려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두 부처간의 소통 부족으로 인해 정부 대책에 큰 구멍이 있다고 지적한다. 전세대출 보증 시장 점유율이 높은 HUG를 중심으로만 대책을 마련하면서 똑같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HF는 전혀 고려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는 “대부분의 빌라 가격이 2억 원 이하라는 점에서 전세 대책의 허점을 악용한 깡통전세 대출, 전세사기가 심각하다”며 “정부기관인 두 곳이 전세대출 보증이라는 똑같은 업무를 보는 만큼 서둘러 보증기준을 통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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