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병상이 포화상태에 접어들며 의료 대응 체계가 한계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제기
- 회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것으로 합의된 환자의 중환자실 입실 제한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
수도권 코로나19 중증 환자 전담 병상 가동률이 90%에 육박한 가운데 지방 중환자실 중증 병상도 포화상태에 접어들면서 의료 대응 체계가 한계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서울에 있는 5대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은 중환자실이 100% 가동률을 기록해 현재 추가 환자를 받을 수 없고 세브란스병원은 1개, 서울대학교병원은 5개, 삼성서울병원은 3개 병상만 남은 상황에 처했다.
이처럼 상황이 날로 악화되자 대한중환자의학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학회는 중환자 병상이 위증증 환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뇌·심장·간·신경근골격계 등 말기장부전, 예측 사망률이 90% 이상인 중증 외상·중증 화상, 대량 뇌출혈 등 심각한 뇌기능 장애 등 국제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것으로 합의된 환자의 중환자실 입실 제한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회가 제시한 제한 대상 환자는 다음 6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 뇌·심장·폐 등의 말기 장기부전
- 중증외상·중증화상(예측사망률 90% 이상)
- 대량뇌출혈·중증치매 같은 심각한 뇌기능장애
- 기대여명 6개월 미만의 말기암
- 최근 3개월 사이 심근경색·뇌경색 등을 앓았거나 중증외상 및 두개강내 출혈 등으로 생존이 어려운 환자
- 예측생존율 20% 이하
학회는 "정부의 병상 동원령에 따라 상급종합병원들이 이미 허가 병상의 1.5%를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으로 내놨고 비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10% 이상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중등증 코로나19 환자를 위해 허가 병상의 3%를 추가로 동원하면 비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30% 이상 줄여야 한다"며 "암, 심장, 뇌 수술 환자의 집중 치료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 단기간에 개선이 힘든 중환자 병상
정부가 강제행정명령을 내리면서 3일부터 중환자실이 부분적으로 늘어나지만 지금의 병상 대란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환자의학회 서지영(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차기 회장은 “중환자 병상은 일반 병상과 달리 쉽게 확장하기 어렵다. 일반 중환자실을 코로나19 환자로 돌리면 비(非)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이 줄어 암·심장·뇌 등 수술 후 집중치료와 응급 중환자 진료가 제한된다”고 했다. 코로나19와 일반 중환자 양쪽 다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 최중증 환자는 45개 상급종합병원이 주로 담당한다. 민간병원이 33곳, 국립대 부속병원이 12곳이다. 국립대병원은 공공병원이긴 하지만 국립병원이나 시립병원처럼 정부가 맘대로 동원하기 어렵다. 종합병원 259곳 중 국립병원도 많지 않다. 중환자실은 일반 병실과 달리 의사·간호사, 장비, 병상 간격 같은 시설 기준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 맘대로 늘리기 어렵다.
◆ 미흡했던 의료 인프라 투자
한국의 인구 1000명당 급성 병상 수는 7.1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5개)의 두 배에 달한다. 그렇지만 중환자실은 항상 부족하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중환자실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다 숨지는 환자가 적지 않았다. 중환자의학회 홍석경(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 중환자실표준화이사는 “수도권에서 중환자를 받을 여력이 거의 없다. 평소 의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공간은 있을지 몰라도 인력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지영 차기 회장은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 대비해 국가가 투자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대부분 민간이 투자했고, 이번에 재난을 맞아 사회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 수가 개선이 절실한 중환자실
하지만 최고 간호등급(1~5등급 중 1등급)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의 하루 입원료가 약 50만원이다. 2018년 이후 간호관리료·전담전문의 가산료 등을 올린 게 이렇다. 심장 MRI(자기공명영상촬영, 약 52만원), 전신 MRI(약 61만원)보다 못하다. 지난해 한 대학병원 연구진이 대형병원 10여 곳의 중환자실 원가를 분석했더니 수가가 원가의 60%에 불과했다.
중환자의학회 홍석경 이사는 “한 병상에 연간 1억원의 적자가 난다”고 말했다. 홍성진(마취과)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교수도 “중환자실을 운영할수록 적자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유명 대학병원장을 지낸 의사는 “중환자실 의사가 사람을 늘려 달라고 요구해 피해 다녔다”고 토로했다.
정부 관계자는 “건보 수가를 그동안 많이 개선했다. 다만 원가에 못 미치는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의료법에는 전체 병상의 5%를 중환자실로 운영하게 돼 있다.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이 7~8% 운영한다. 국립대병원은 10% 안팎으로 약간 높다. 민간병원·국립대병원 할 것 없이 현재 비율이 최대치에 가깝다.
◆ 사각지대에 놓인 중환자실 문제
홍성진 교수는 “문재인 케어(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 같은 표가 되는 곳에 투자하다 보니 중환자실은 사각지대에 놓인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암·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에 집중했다. 문 케어, 4대 중증질환 둘 다 대선 공약이다. 수혜자가 눈에 보이지만 중환자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87개 상급종합·일반종합병원의 중환자 진료의 질을 평가했다. 중환자실에 전담전문의를 둔 데가 47%, 장비·시설을 제대로 갖춘 데가 38%에 불과했다. 전담전문의 중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는 40%였다. 간호사 1인당 병상이 1.03개인데, 3교대 근무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간호사 1명이 4.8명의 환자를 돌봐야 한다. 심미영 병원중환자간호사회장은 “병상당 간호사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 올바른 해결책은?
연세대 의대 박은철(예방의학) 교수는 “민간병원이 공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인데, 최소한 원가는 보전해 줘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민간병원을 압박해 중환자실을 만드는 지금 방식은 한계가 있다”며 “지난해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을 비웠듯이 건물을 통째로 비우거나 모듈 병상(이동형 병상)을 만들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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