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인형 사무장병원 운영해 온 비의료인에게 잇따라 무죄 선고
- 법원 “법인 명의 악용해 탈법한 사정 모두 가려서 판결해야”
- 대법원 전원합의체,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악용해 탈법했다는 사실 입증되야 처벌하는 기준 마련
법인형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며 수익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비의료인들에게 대법원에서 잇따라 무죄가 선고되며 의료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의료인 개인이 법인 명의의 의료기관을 운영했다는 사실만으로 사무장 병원으로 단정해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합의체가 사무장법원으로 제시한 새로운 기준도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8일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은 의료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A의료법인 이사장 B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비의료인인 B씨는 A의료법인을 설립해 법인의 명의로 C병원을 개설, 운영해오다 의료기관 개설 자격 위반 혐의가 적발되어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에서는 모두 B씨에게 사무장 병원 운영 등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B씨가 개인 자금으로 C병원의 운영 자금을 조달하거나 개인 계좌와 법인 계좌 간 자금 이동이 반복됐던 점이 근거로 작용했다. 법인 이사회 의결 없이 법인 자금이 쓰이거나 회계 결산에 누락되기도 했던 점도 지적됐다. A의료법인의 이사로 근무한 B씨의 자녀들도 개인적인 용도로 수 차례 법인 재산을 사용해 온 정황이 나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같은 법원의 판결을 180도 뒤집었다. B씨의 가족이 법인 재산을 유용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것만으로 유죄를 선고하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B씨의 가족이 의료법인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의료법인 공공성과 비영리성을 일탈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의료인이 법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세웠다는 사실만으로 ‘사무장병원’으로 단정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앞선 판례를 따른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7일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명의를 악용해 실제 탈법까지 저질렀다는 사실을 가릴 필요가 있다며 사무장병원으로 취급하는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대법원 재판부 역시 “B씨가 정상적인 회계처리 없이 입출금한 자금 규모와 기간, 경위는 물론 B씨가 C병원 운영이 아니라 본인 필요에 따라 법인 재산을 입출금했는지 여부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B씨가 자녀가 법인 재산을 유용한 혐의도 구체적으로 따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A의료법인 설립에 절차상 문제가 있고, B씨의 본인 출연 재산을 부풀린 점만으로 유죄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A의료법인 설립 과정에서 이사록을 허위로 기재하고 발기인 총회를 생략해 절차상의 문제가 있고, B씨가 개인 재산으로 C병원 개설 자금을 대고 운영하며 본인 출연 재산을 부풀렸으나 의료법인 설립허가나 운영기관 개설 및 운영에 영향을 미치고, 의료법인의 규범적 본질을 부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 재판부는 B씨에 대한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환송해 재심리하도록 했다.
앞서 부산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의료인인 친족 등과 공보해 사회복지법인 명의로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혐의로 기소된 D사회복지법인 이사장 E씨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함께 기소된 E씨 조카 의료인 F씨 등도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지난 달 20일 부산고등법원은 이들이 의료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했다는 검사 측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검사는 지난 2014년 비의료인 E씨 주도로 D법인을 세우고 법인 명의로 G요양병원을 개설한 뒤 의료급여 29억 3715만 5580원과 요양급여 119억8402만 6780원을 편취했다며 유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부산고법 재판부는 G병원이 실질적으로는 비의료인 E씨가 개설했다고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거나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비의료인 E씨가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 건물에 H병원을 열고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병원 수익 일정 부분을 수령한 의혹이 있지만 사무장병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부산고법 재판부는 "D법인과 G병원은 수입과 지출이 별도 관리됐고 E씨가 법인과 병원 계좌를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정황도 없다. G병원 운영 기간 중 E씨 등 관련자 재산이 증가하거나 병원 수익을 실질적으로 분배 받았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E씨가 본인 회사를 통해 병원 수익 상당 부분을 분배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산고법 재판부는 "E씨가 G병원 원장으로서 의료행위에 개입하거나 부정한 의료행위를 지시하지도 않았고 관계 관청도 G병원 의료행위를 문제 삼지 않았다"며 "이를 종합하면 비의료인 E씨가 법인 다른 임원을 배제하고 오로지 본인 이익을 위해 G병원을 사적으로 운영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부산고법 재판부는 D씨 등의 유죄를 주장하는 검사 항소에 이유가 없다면서 모두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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