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의사 정원 줄다리기, 다른 국가들은 어떨까

- 의학교육협의회 의사 정원 거버넌스 구축 방안 모색... 외국 의대 증원 사례 소개
- 의료계 중심 독립 기구 만들어 체계적으로 논의해야
- 정부, 거버넌스 필요에 동의... 필수의료 정책과 병행할 필요 있어

정부와 복지부가 적극적으로 의사 정원 확대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 내에서도 단순히 논란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료전문가들도 의료계와 정부가 협력해 의사 정원을 다루는 상시적인 정책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조언하고 있다.



지난 29일 한국의과대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종태 연구소장은 서울대 암연구소에서 열린 ‘의사 정원 책정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 토론회’에서 의대 정원과 관련한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한국도 이들처럼 거버넌스 구축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네덜란드,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의대 정원과 관련해 전문적인 기구를 두고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미국과 네덜란드의 경우 교육과 수련 관계자 등 의료계 전문가도 참여하는 상설기구를 운영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사 정원 문제를 넘어 전공의와 의사 교육과 재정 지원까지 폭넓게 다룬다.

이 소장은 한국도 이들처럼 의료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상설 기구를 설립해 독립성을 보장해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이 소장은 “거버넌스가 제 역할하려면 의료 인력 계획 수립 과정에 정부와 비정부 조직간 강력한 협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독립적인 상설 기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문성을 갖춘 이들로 구성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야 한다. 물론 그 중심은 의료인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거버넌스의 핵심으로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거버넌스에서 마련한 의견이 실제 정책에 반영되고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거버넌스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의사결정 신뢰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매년 의사 인력 추계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고, 네덜란드도 의료 인력 수급 시뮬레이션 모형을 개발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며 “이처럼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제대로 예측하고자 노력할 때 의사 결정이 투명하고 거버넌스가 신뢰를 얻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양은배 수석부원장도 전문가의 의견에 근거한 민관 협력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교육자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다.

양 부원장은 “미국과 네덜란드처럼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이해관계자가 합리적인 의사 근거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과 여건이 돼야 거버넌스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여기에는 의과대학과 수련기관의 교육자도 포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기구의 신뢰 확보를 위해 거버넌스가 권한과 함께 책임도 다해야 하는 부분을 꼽았다. 양 부원장은 “10년 후 결과를 책임지라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 논의에 참여하는 구성원 각자가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이해관계자 간의 이를 충분히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의료계의 태도도 지적받기도 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의료계 역시도 무조건적 반대 입장만 표명할 뿐 대안을 제시하거나 협의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신성식 기자는 “의료계가 그간 의대 정원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한 적이 별로 없다. 제가 대한의학회 산하 교육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오래 일했지만 의사 정원 문제가 의제로 오른적은 없었다”며 “지금 정부의 정책을 지적하고 있지만 의료계도 공동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거버넌스를 구성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의료계 역시도 다양한 분야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신 기자는 “의료 전문가가 거버넌스를 주도해야 하지만 정책 전문가도 분명 필요하다. 의사는 진료 전문가이지 정책 전문가가 아니다”라며 “사회 여러 분야와 협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의사 정원 정책을 다룰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의료계 의견에 동의하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중심으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복지부 송양수 의료인력정책과장은 “거버넌스 필요성에 동감한다. 다만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계하고 구성할지 앞으로 논의와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정책 효과를 평가하고 (의사 인력) 공급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기재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송 과장은 “지난 8월 보정심을 구성했고 산하에 전문위원회를 둘 계획이다. 여기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수시로 마련하겠다”며 “전문위원회 운영에 대한 의료계 우려도 알고 있다. 운영 전반에 걸쳐 의료계와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의사 수만 확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과 진료과목 간 불균형을 해소할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책을 마련하겠다. 보정심에서 이에 대한 논의도 진행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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