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들의 개원가 탈출러쉬, 지방부터 도미노 붕괴 위기

- 인력난 속 당직 부담 높아지는 교수들, 보상도 적어 ‘밤 새워 환자 보면 손해’
- 서울아산병원 5명 동시사직 등 프리랜서 활동 등 곳곳에서 진료차질
- “개원 준비를 ‘대학병원’서부터... 교수 이탈, 점점 가속화될 것”

대학병원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탈출이 점점 더 가속화되어 지방 대학병원들을 시작으로 점차 인력난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5명이 동시에 사직해 ‘프리랜서’로 전환됐고, 부산의 한 대학병원도 내분비교수들이 전원 사직하면서 진료를 잠시 진료 차질이 생겼으나 최근 1명을 채용해 겨우겨우 진료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으로의 인력 유출에 이어 최근에는 개원가로의 이탈까지 빈번해지면서 지방일수록 더 교수 구인난이 극심한 상황이다. 창원경상국립대병원은 응급의학과 교수를 구하지 못해 7명 모두를 촉탁의로 채웠다. 교수직 인력 채용이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지방의 한 대학병원 기획조정실장은 “교수들을 모시러 다니기 바쁘다”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대학병원 교수들이 수도권이나 개원가로 이탈하는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최근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꼽힌다. 밤을 새워 환자를 보고 진료를 해야하는 동시에 학생 교육과 연구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만 과거 의과대학 교수나 필수의료 분야 종사자로서의 사회적인 존경과 경제적인 보상이 이를 충족시켜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의사 구인난으로 인해 촉탁의 월급이 높아져 남은 대학교수들의 박탈감을 키우기도 한다. 밤을 새워 환자를 지키던 교수들 사이에서 이제는 ‘밤을 새워 환자를 보면 손해’라는 분위기가 점점 더 고조되면서 대학병원을 떠나 개원가로 향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전공의법이 시행되며 더욱 이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력난이 수년째 지속되는 진료과들의 교수 당직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업무 부담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소아청소년과나 내과,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안과 등 개원이 상대적으로 쉬운 진료과를 중심으로 교수들의 개원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B대학병원 C교수는 “전공의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전공의 근무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교수들이 당직을 서고 있다. 중환자들도 많고 의료사고 위험도 높다. 거기에 논문도 써야하며 학생 교육도 책임져야 한다. 심지어는 진료 압박도 높다”며 “굳이 대학병원에 남아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밖으로 나가면 경증환자를 보면서 돈은 돈대로 많이 벌고, 밤새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커지니 개원가로 다들 나가고자 하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구인난으로 교수들 자리에 촉탁의를 채용하는데 고액 연봉의 촉탁의로 인한 박탈감도 상당하다. 이럴 바에 차라리 대학병원을 그만 두겠다는 것이 요즘 대학교수들의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D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 E교수도 “갈수록 교수들에게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학생 교육도 해라, 논문도 써라, 진료도 하라 등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못해먹겠다’며 대학병원을 나오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그나마 힘들어도 대학교수라는 ‘가오’라도 있었지만 요즘은 이마저도 없다. 할 맛이 안 난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학병원 마취과는 너무 힘들다. 수술 전 과정에서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하는 과가 마취과다. 수술 시 항시 대기해야 하고 당직 부담도 크다. 그렇다 보니 마취과는 수도권이고 지방이고 할 것 없이 이탈이 심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대학병원이 사실상 개원을 준비하는 곳으로 전락됐다는 말도 나온다. 개원이 비교적 쉬운 분야를 중심으로 세부분과를 선택하는 기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그렇다. 이런 기조 속에 지방 대학병원의 경우 개원하더라도 돈이 되지 않는 일부 진료과들은 후학 양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C교수는 “우리 병원 산부인과 산과 교수가 올해로 59세다. 고위험 산모를 보는 산과 전문의인데 후계자가 없다. 이 분이 당장 내일 은퇴한다면 고위험 산모를 돌볼 산과 의사가 없는 셈”이라며 “산부인과 전공의가 2명이 있지만 산과를 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고위험 산모를 볼 자신이 없다며 수련을 마치면 대학병원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고 탄식했다.

F대학병원의 소화기내과 교수 G씨도 “소화기내과와 안과, 이비인후과 등 개업하기 좋은 진료과 교수들은 개원으로 다 빠진다. 심장내과가 전임의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응급은 안 한다. 혈관조영술 하는 심혈관질환도 안 한다. 흉부외과도 혈관이나 심장은 안 보고 개업하기 쉬운 분야만 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이 시작이고 내년이나 내후년이 되면 더 큰일이 날 것 같다”며 “지금 버티는 사람들도 옆에서 나가니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진 상황”이라고도 했다.

대학병원은 교수 인력 공백을 촉탁의로 메우고 있지만 당장의 문제를 무마하려는 것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진료기능 외 학생 교육과 연구에도 구멍이 나기 시작하면 대학병원 진료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수도권 대학병원보다 인력난이 심각한 지방 대학병원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면 필수·지역의료에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C교수는 “심장수술을 하는 흉부외과나 암을 보는 진료과에서 인력이 구멍이 나기 시작하면 정상 진료를 할 수 없다”며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고령 환자들로 한 가지 질병만 갖고 오진 않는다. 하나라도 구멍이 생기면 정상진료를 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라면 규모가 작은 대학병원부터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D교수는 “과별 가산수가를 줄 게 아니라 중증·응급상황에 대한 수가를 올려야 한다. 진료과에 가산수가를 주면 개원해서 돈을 더 벌려는 사람이 늘 수밖에 없다. 특정 응급시술행위를 수가로 늘리고 거기에 가산수가를 줘야 한다”며 “바닥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러다가 대학병원이 무너질 판”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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