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CT검사 안 해 대동맥박리 놓쳤다며 의료진 업무상 과실 지적로 실형 선고
- 의료계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에서 모든 환자에게 CT 촬영하라는 것이냐”
- 의료진이 CT촬영 권유했다는 주장도 환자 측 반대 증언만으로 인정 안 해
흉통으로 인해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가 대동맥박리로 인해 뇌병변 장애를 입은 사건과 관련해 이를 응급실에서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응급의학과 의사가 실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의료진의 과실로 지적받은 이유가 ‘CT촬영’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의료계는 이유가 불문명한 응급 환자들이 몰려오는 응급실의 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환자들에게 CT 촬영을 하라는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는 반응이다.
이에 의료계는 물론 일부 법조계에서까지 그간의 의료 관련 형사 사건에서 의료 행위에서의 과실과 악결과 사이에 명백한 인과관계를 요구해온 법원이 최근들어서는 다소 피해를 주장하는 환자 측에 온정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추세라고 분석하고 있다.
B씨는 지난 2014년 9월 11일 밤 12시 55분경 안면부 감감 이상, 식은땀, 구토와 함께 흉부 통증을 호소하며 A씨가 근무하던 병원 응급실에 급히 방문했다. 당시 전공의 1년차였던 A씨는 B씨에게 심전도검사와 심근효소 검사 결과에서 별다른 이상 소견을 발견하지 못했고, 급성 위염으로 1차 진단을 내렸다.
같은 날 새벽 5시 30분경 진통제 투여로 B씨의 흉부 통증이 완화되자 별다른 조치 없이 퇴원했으나 B씨는 같은 날 오전 10시경 대동맥박리로 인한 양측성 다발성 뇌경색이 발생해 의식을 잃었다. 결국 B씨는 인지기능 상실과 사지마비 등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다.
이에 B씨 측은 A씨가 근무하던 병원을 상대로 억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의사 A씨에 대해서는 업무상 과실치상, 의료법 위반 등으로 형사고발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A씨가 B씨가 호소하고 있던 통증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하여 흉부 CT 검사 등 추가적인 검사를 반드시 실시해야 했으나 이를 실시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이를 ‘업무상 과실’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추가적인 진단 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피해자가 수술 등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해 피해자를 단순 급성 위엽으로 추정 진단하고 진통제 등만을 투약 처방한 뒤 퇴원시켰다”며 “이로 인해 피해자가 조기에 대동맥박리를 진단받고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룔르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A씨가 CT 촬영을 B씨의 보호자였던 딸에게 먼저 2차례 제안했으나 이를 거부해 진행하지 못했다고 항변했으나 그런 적 없다고 반박한 B씨 딸의 증언만 인정해 이를 기각했다.
또 이후 B씨의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가 “피해자가 처음 방문한 병원(A씨)에서 수술을 했다면 이후에 발생한 의식 저하와 심한 저혈압 상태 및 심장마비까지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급성 A형 대동맥 박리증의 응급수술에 따른 뇌손상 가능성이 약 12~15% 내외인 것을 고려한다면 현재 피해자가 겪고 있는 저산소증 뇌손상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라고 A씨의 과실을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A씨의 의료진 과실도 지적했다. A씨가 사건이 발생하고 13일이 지난 뒤 2014년 9월 24일 병원 의무기록시스템이 접속해 피해자와 보호자 측에 흉부 CT 검사를 권유했다는 취지의 경과기록을 작성한 것이 진료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했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A씨는 “B씨의 보호자에게 대동맥박리, 폐색전증, 기흉으로 인한 종격동 기종 등을 확인해 보고자 흉부 CT검사를 권유했으나 보호자가 조금 더 지켜보길 원했다. 그러나 새벽 4시쯤 다시 환자의 명치 부위의 통증이 심해져 응급의학과 2년차 레지던트와 상의해 흉부 CT 검사를 다시 한 번 권유했음에도 B씨의 딸이 괜찮다는 의사를 표현해 CT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사를 권유받은 적이 적이 없다는 B씨의 딸의 진술을 토대로 B씨의 딸이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고, 상당한 의학적 지식이 있는 만큼 2번에 걸쳐 의료진이 흉부 CT검사를 권유했다면 이를 거부했을 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B씨의 딸의 주장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그에 따라 A씨가 진료기록부에 작성한 흉부 CT 검사를 권유했다는 내용 역시 진료기록부를 거짓 작성한 것임으로 의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어진 항소심에서 A씨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며 B씨에게 발생한 악결과와 흉부 CT 검사 미실시로 인한 과실간의 명백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의료사고에서 의사의 과실과 악결과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주의의무 위반이 없었더라면 그러한 결과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게 증명이 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A씨 측은 “피고인에게 과실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퇴원 후 C병원에 방문하기 전, 늦어도 A씨의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에 이미 대동맥박리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명백한 사실이 입증되어야만 한다”며 “그러나 원심은 피해자의 대동맥박리의 발생 시기가 내원하기 전인지, 퇴원한 전인지, 후인지가 명백하지 않은 상황에서 피고인이 내원했을 때부터 대동맥박리가 발생해 진행중이었을 것이라고 단정짓고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과 피해자의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흉부 CT 검사를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내원 당시 피해자에게 대동맥박리까지 발생했는지가 불분명하고 발생했다고 하더라고 흉부 CT 검사를 통해 이를 발견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B씨가 병원을 찾았던 지난 2014년 9월 11일은 추석 연휴 다음날로, 당시 A씨가 근무하던 병원은 대형종합병원이었다. 때문에 대동맥박리를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수술을 즉시 시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A씨 측은 “설령 흉부 CT 검사로 대동맥박리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환자 B씨가 다른 병원으로 내원하게 된 급박한 증상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곧바로 수술을 진행하거나 피해자가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2014년 9월 11일보다 더 이른 시점에 수술을 착수해 악결과를 방지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현실적으로 현저히 낮다”고 주장했다.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피고인은 2차례에 걸쳐 피해자 측에 흉부 CT 촬영을 권유했다. 따라서 피고인이 거짓으로 의료기록을 작성한 사실이 없음에도 원심은 C병원의 운영법인이 이 사건과 관계없는 의료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진술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피해자 측의 진술만을 근거로 아무런 객관적인 근거 없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피고인이 흉부 CT 검사 등 추가 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것에 과실이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위와 같은 과실과 피해자의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환자의 당시 증상, 나이와 병력, 감정 의사의 의견을 종합했을 때 환자 B씨가 병원 응급실에 최초 내원했을 당시 대동맥박리가 발생한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환자의 증상 및 통증 양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흉부 CT 검사 등 추가적인 검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의사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며, A씨가 흉부 CT 검사를 권유했다고 주장하나 환자 측이 이를 부인하고 있다며 원심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봤다.
결국 실형 선고가 내려진 상황에서 의료계는 분노하고 있다. 앞으로 응급실에 방문하는 모든 흉통 환자들에게는 우선적으로 흉부 CT 촬영을 줄지어가며 시행해야 하냐는 것이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는 “응급실은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환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방문하는 곳으로 당연히 향후 결과에 대해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며 “향후 연간 100만 명이 넘는 흉부관련 증상을 가진 응급환자들은 모두 CT 촬영을 해야할 것이고 이는 불필요한 진료비의 폭증을 불러옴과 동시에 대동맥박리 수술이 불가능한 병원들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애초부터 환자를 거부하게 될 것”이라고 탄식했다.
일부 법조계에서도 최근의 법원 판결 경향이 다소 환자 온정주의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의료사고 기소율이 일본의 약 270배, 영국의 900여배에 이르는 수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형사 소송은 범죄의 유무룰 판단하는 소송으로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목적이기에 책임 여부를 따지는 민사소송과 다르다. 처벌이 목적인 만큼 명백하고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수준으로 범죄 사실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최근 판결 경향을 보면 환자 온정주의적 판결을 내리는 추세”라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당연히 의사 탓으로 보이겠지만 사법부는 의료 현장의 특성을 고려해 객관적으로 범죄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판결은 올해 2월 대법원이 주사치료 중 업무상 주의의무 소홀로 환자를 감염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게 업무상과실 무죄를 선고한 판결과 다소 비교된다.
당시 대법원은 “의사에게 의료행위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의료행위 과정에서 공소사실에 기재된 업무상과실의 존재는 물론 그러한 업무상과실로 인해 환자에게 상해, 사망 등 결과가 발생한 점에 대해 엄격한 증거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설령, 의료행위와 환자에게 발생한 상해, 사망 등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검사가 공소사실에 기재한 바와 같은 업무상과실로 평가할 수 있는 행위의 존재 또는 그 업무상과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면, 의료행위로 인해 환자에게 상해.사망 등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정만으로 의사의 업무상과실을 추정하거나 단순한 가능성, 개연성 등 막연한 사정을 근거로 함부로 이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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