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대 증원 방침 재확인되자 “필수의료 말살 정책”
- 사법 리스크 완화 방안에도 “책임 미루기” 시큰둥
- 개원면허·면허갱신제 추진 “의사 노예화” 반발
정부에서 공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의료계에서는 반발하였다. 그 중심에는 의대 정원 증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법 리스크의 완화 등 의료계가 요구해 왔던 사안도 함께 발표하였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며 생색내기용이라고 비판하였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10조원을 투입한다고 했으나 별도의 재원이 아닌 건강보험의 재정들을 활용한다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밖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지지 성향이 강한 의사들 사이에서는 윤석열 정부를 비롯해 여권에 실망했다며 오는 4월 총선에서 표로 의심(醫心)을 보여주자는 말들도 나온다.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1일 의사들은 들끓었다. 정부는 증원 규모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예고했던 대로 오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겠다고 했다. 오는 2035년 의사 수가 1만5,000명 부족하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문재인 정부보다 더하다”, “국민의힘 지지 철회하고 다른 정당으로 갈아타겠다” 등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우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강남 지역 등에서 여권 후보 낙선 운동을 전개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한 개원의는 “이번 발표는 지난 대선에서 0.7%p 차이 신승을 만들어 준 지지 세력의 등에 칼을 꽂는 배신행위다. 용서할 수 없다”며 “총선에서도 득표율 몇 %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 특히 여당 우세 지역에서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의료 접근성이 가장 좋은 나라가 한국이다. 여기에 인구도 줄고 있는데 다른 의료현안은 해결하지 않고 의대 정원 증원을 밀어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고도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증원은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며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충분한 논의와 합리적 합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자”고 했다.
의협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필수·지역의료 등 기피 분야에 대한 적정 보상과 법적 부담 완화 등 근본적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는 의학교육의 질 저하는 물론 건강보험재정에 큰 부담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며 “의학교육 전문가단체의 의견을 경청해 의대 정원 정책에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의협은 “필수의료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정책 방향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정책 패키지 세부 내용은 미비하다고도 지적했다.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사망사고와 미용·성형을 제외한 제한적 특례적용 범위 ▲개원면허와 면허갱신제 도입 등은 “의료계와 충분한 소통 없이 발표됐다”며 유감을 표했다. 정부가 사법 리스크 완화를 위해 추진하겠다고 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에 대해서도 “특례적용 범위에 사망사고와 모든 진료과목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의협은 “무엇보다 필수의료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재정투입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며 “기존 건강보험재정을 재분배하는 수준의 보상체계 조정이 아닌, 별도 기금을 설치·운영해 국가적 지원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무너져 가는 우리나라의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고도 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근거로 제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책보고서 자체가 잘못됐다며 “정부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 내용만 선택적으로 발췌해 가며 국민 건강을 나락으로 빠뜨릴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총선 유불리만을 따지며 국민 건강을 도외시하는 게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이냐”고도 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필수의료를 살리기는커녕 대한민국 의료 자체를 말살시키는 수준의 재앙적 대책”이라며 “의사 노예화 대책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특히 개원면허제 도입에 대해 “개원 시장을 철저히 통제해 병원급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쉽게 개원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의도”라며 “직업 선택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부당하게 통제하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에 대해서도 “결국 의사가 배상과 공제보험에 의무 가입해 의료사고 발생하면 배상액을 보험에서 나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개인이 보험에 가입해 이를 해결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했다.
차기 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도 우려를 표하며 반발했다. 이들은 의협 책임론도 제기했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참담하다”고 했다. 박 회장은 이날 영등포구 서울시의사회관에서 가진 제42대 의협 회장 선거 출마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속이기 위해 정책 패키지를 다양하게 나열했다”며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는 정책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죽이려는 정책이지는 않은지 세부 내용 하나하나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박 회장은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1년간 수십 차례 협상과 회의를 하고도 의협을 패싱했다. 의협을 패싱하지 않았다면 의협은 그 세부 내용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가 되고 협의를 한 내용인지 궁금하다”며 “의대 정원 정책은 물론 오늘 발표된 내용은 포퓰리즘적이고 정치 이해타산에 따른 내용이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도 했다.
박 회장은 “정부가 의협을 패싱하고 무분별하고 막무가내식으로 정책을 발표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의협의 무기력한 모습도 안타깝고 참담하다. 서울시의사회 단독으로라도 회원을 위해서 강력 대응하겠다”고 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했지만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막기 위해 “지금부터 개인적인 선거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했다. 임 회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단군 이래 최악의 보건의료망책”이라고 비난하며 이같이 말했다.
임 회장은 “개원 진입장벽을 높이고 각종 규제로 개원가를 비롯한 의료환경을 황폐화 시켜 의사들을 반강제적으로 고위험 고난도 저보상 진료 영역으로 몰아 넣고 있다”며 “의약분업이나 원격의료와는 차원이 다른 ‘핵폭탄급’ 중대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협은 당장 전국 대표자회의와 대규모 장외집회, 무기한 파업을 포함한 모든 투쟁 수단을 현실화하라”며 “용기가 없다면 당장 물러나고 결기로 무장한 회원들이 앞으로 나설 수 있도록 내려오라”고 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이 대표로 있는 미래의료포럼도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부터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는다”고 했다. 주 대표는 42대 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한다. 미래의료포럼은 “필수의료 살리기를 위한 정책 패키지가 아닌 필수의료를 말살하기 이한 정책 패키지”라며 “총선 전 기획 정책인 의대 정원 증원을 거행하기 위한 눈속임 정책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미래의료포럼은 정부가 의료배상 책임보험과 공제 가입을 전제로 형사처벌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도 “형에 대한 선고는 정부가 아닌 사법부 역할이다. 헌법상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을 정부가 하겠다고 하는 정책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미래의료포럼은 “전문가 집단 대표인 의협과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결과물은 의사들에게 허탈과 분노를 넘어 절망을 안기고 있다”며 의협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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