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실패를 살인죄로... 과도한 책임에 무너지는 응급의료 현장

의료진 자부심 상실에 전공의 지원 급감... '사법리스크' 해소 위한 특례법 도입 시급
응급실 '뺑뺑이' 오명... "배후 진료과 부족이 근본 원인" 의료 시스템 개선 촉구
골든타임 못 지켰다고 비난... 응급의학과 의사들 "환경적 요인도 고려해야"

최근 우리나라 응급의료시스템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과도한 사법적 부담이 응급의료 현장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 사진 출처 : 라포르시안

이는 응급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적 판결로 인해 의사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혀 응급실을 떠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전공의 지원율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지난 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벼랑 끝 응급의료, 그들은 왜 탈출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한 목소리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의 조속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의 류정민 교수는 현재 응급의료 현장이 겪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지적했다. 그는 "최근 사법리스크가 굉장히 부각되면서 자부심을 상실하게 된 의료진이 탈출하고 있다"며, "이로 인한 인력 부족은 더 심각해지고, 결과적으로 사법리스크는 더 올라가게 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낙수의사'라는 표현이나 사회적 불신의 증가로 인해 의료진들이 자부심을 잃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의 의료 구조가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응급의료 현장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공의 1년차 시절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했던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사례가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훈련병 얼차려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에 시달린 응급의학과 의사가 결국 응급실을 떠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류 교수는 응급의료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사법부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를 살리지 못한 것은 죽인 게 아니다"라며, "환자가 사망하는 과정 중에 의사가 최선을 다해 개입해 살릴 수 있었지만 막지 못한 것을 살인죄로 보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필수의료는 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류 교수는 또한 응급실 의료진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들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경적인 요인이 컸다고 한다면 보건 당국의 배상 책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며, "반드시 환자 상태나 의료인 능력, 적절한 배치 여부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의료인이 적절히 배치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한 파악과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응급의학과 박경석 전문의는 '응급실 뺑뺑이'라는 표현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어떤 응급실 의사도 환자를 보기 싫어 수용하지 않는 경우는 결코 없다"며, 이는 배후 진료과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전문의는 중증 응급환자 치료를 위한 수술이나 영상의학과 시술이 모두 불가능한 병원이 많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러한 병원에 환자를 데려다 놓는다고 해서 환자가 치료되거나 살아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 전문의는 배후 진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강제적인 처벌 방식이 아닌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본인이 나서서 당직을 하고 싶을 정도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그 정도가 돼야 인력도 충분히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이경원 공보이사는 응급의학과 인력 양성을 위한 전임의 보조 수당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전공의 뿐 아니라 전임의가 돼야 교수가 되고 대학병원에서 후속세대를 기를 수 있다"며, "전임의들에 대한 수련보조수당 등 최소한의 보상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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