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사직전공의 '진퇴양난'... "일자리 없지만 수련 복귀는 거부"

대학병원·개원가 모두 채용 어려워... "전문의만 상담료 청구 가능" 제도적 한계
의사회 "사직전공의 개인정신요법 한시 허용" 요청... 정부 대책 촉구
사직전공의 "정부 불신 여전... 의료현장 문제 해결 없인 복귀 없다" 강조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사직한 전공의들 중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들이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학병원에서 입원이나 당직을 전담하는 일반의를 채용할 때, 주로 내과나 외과 등 관련 분야의 전공의 경험을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정신과 사직 전공의들은 대학병원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개원가에서의 상황이다. 다른 과와 달리 정신과의원에서는 전문의가 진료했을 때만 상담료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적 제약이 있다. 이로 인해 정신과 개원의들은 사직 전공의를 고용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정신과 사직 전공의 A씨의 사례를 통해 잘 드러난다. A씨는 서울 소재 대학병원 정신과 전공의 3년 차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A씨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2020년 9.4 의정합의문을 어기고 의대 증원 정책을 추진한 정부를 보며 “희망을 잃었고 사직서를 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정신과의사회가 개최한 정기학술대회에는 A씨 이외에도 정신과 사직 전공의 다수가 참석했다.

A씨는 “고충을 토로해온 의료 현장의 문제는 반영하지 못한 의료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한 시기는 4년마다 찾아오는 총선을 앞두고였다”며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A씨는 “정책을 추진하는 근거가 부실하고 오히려 의료 공백 가속화가 예상되는데도 ‘국민의 염원을 담은 정책’이라고 소개하며 이를 반대하는 의사를 악마화하는 정부를 보면서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환자와 의사 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그는 “전공의들의 기본 인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강압적인 정부 태도에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며 “24시간도 되지 않아 손바닥 뒤집듯 했던 말을 번복하는 정부 모습을 보면서 더 신뢰하기 어려웠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잘못된 의료정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한국 의료가 떠안을 것이다.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지금껏 그래왔듯이 비판의 화살은 의료계로 향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도 그는 “환자와 의사가 안전할 수 있는 미래 의료 환경을 꿈꾼다”며 “현 사태의 심각성과 더 빨라질 의료 붕괴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선배 의사들은 의대 증원 정책 저지에 앞장선 후배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에게만 상담료가 책정되는 제도로 인해 다른 과와 달리 개원가는 사직 전공의 채용에 한계를 느낀다. 정신과의사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259명의 22%인 58명만 풀타임이나 파트타임으로 사직 전공의를 고용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오히려 사직 전공의를 고용하는 대신 금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응답이 119명(46%)으로 가장 많았다. 일차 진료를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응답은 48명(19%)이었으며, 34명(13%)은 아직 지원 방법을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정신과의사회는 사직 정신과 전공의도 개인정신요법을 할 수 있도록 한시 허용해 달라고 했다.

김동욱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과는 전문의만 해야 하는 행위별 수가가 별로 없지만 정신과는 전문의가 돼야 개인정신요법을 할 수 있다”며 “수련병원은 지도·감독하는 전문의가 있는 경우 전공의 1년 차부터 개인정신요법을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개원가는 지도 전문의가 없기에 사직 전공의가 개인 의원에 취업하면 개인정신요법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정신과와 타 과는 수련 방향도 조금 다르기에 정신과 사직 전공의가 일반의로 타 과를 선택하기도 어렵다”며 “정부가 오는 2027년까지 100만명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정신과 수련을 받은 사직 전공의들이 의원에서 한시적이라도 개인정신요법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국민 정신 건강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과의사회는 이날 학술대회 이후 사직 전공의와 개원의들이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향후 사직 전공의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돕거나 긴급 지원 자금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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