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 판단하에 수술 지연한 외과의사, ‘금고형’ 선고…의료계 강한 반발

- 법원이 사후에 그 악결과만을 문제 삼아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것은 지나친 처사
-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일률적으로 의료인의 과실 유무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문화, 검찰과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방식은 지양돼야

대한의사협회 및 대한외과의사회는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소장폐색환자의 수술 지연에 따른 악결과를 이유로 담당 외과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인정해 금고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의협은 먼저 환자의 악결과 발생에 대해 빠른 쾌유를 기원하면서 이와는 별개로 의학적 판단을 고려하지 않고 유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의학저 판단하에 수술 시기를 늦추고 보존적 치료를 해보자는 결정을 내렸던 외과 전문의는 그 진단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게 됐다. 악화된 환자 상태로 인해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환자를 치료한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의사를 형사처벌하면 소신진료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외과나 흉부외과 등 생명 유지와 관련된 필수의료과를 기피하는 현상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 환자 동의하에 보존 치료 시행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소장폐색 환자를 늦게 수술해 소장 괴사 등이 발생했다며 외과 전문의 A씨에게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인정,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건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7년 11월 한 환자가 복통을 호소하며 A씨가 속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환자를 진찰한 A씨는 장폐색을 의심했다. 하지만 환자의 통증이 나아지고 있고 6개월 전 난소 종양으로 개복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존적 치료를 결정했다. 환자도 경제 사정 등을 이유로 보존적 치료에 동의했다.

하지만 7일 뒤 환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으며 응급 수술로 소장 80cm를 절제했다. 괴사된 소장에 생긴 천공으로 인해 패혈증과 복막염 등이 발생하면서 2차 수술도 했다.

A씨는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기소됐고 법원은 이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당시 해당 환자의 상태를 감안하면 즉시 수술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치료방법이었으며 주의의무 위반으로 수술이 지연됐다”고 인정, 환자에게 장천공, 복막염, 패혈증, 소장괴사 등이 발생한 것을 의사의 과실에 의한 것으로 인정해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했다.

◆ 치료 결과를 형사처벌의 기준으로 삼아선 안돼
의료계는 부당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3일 “환자와 의사가 모두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수술에 앞서 보존적 치료를 우선 시행해보기로 합의한 바 있다”며 “그럼에도 법원이 사후에 그 악결과만을 문제 삼아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의협은 “환자의 치료방법 선택에 대한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부정되고 추후 환자 상태 악화에 대해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면, 우리나라 모든 의사들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방어진료를 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는 법적 책임을 오롯이 감내하면서 환자에게 최선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권유할 의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협은 이어 “현재도 외과 등 필수의료과 기피현상이 심해 의료공백 우려가 현실화되는 심각한 상황에서,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경시하고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는 이러한 판결이 반복된다면, 우리나라의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체계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이와 유사한 판결이 반복됨으로써 의사의 소신진료가 위축되고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체계가 붕괴되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에 ‘의료분쟁특례법’(가칭) 제정을 요구했다.

◆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는 외과의사회
대한외과의사회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라며 수술 지연을 이유로 금고형을 선고한 법원에 유감을 표했다.

외과의사회는 “(이번 판결은) 의료시스템에 또 다른 중대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며 “의사들이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방어적인 방법에만 집중할 것이고, 조금만 의심되더라도 최후 수단인 개복수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외과의사회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일률적으로 의료인의 과실 유무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문화, 검찰과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며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을 배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외과의사회는 또 “지속적인 교육, 동료 평가를 통해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재발방지 방안 마련 등에 집중하는 것이 국민의 건강을 두텁게 보호하는 방법”이라며 “해외 여러 국가가 의료인의 면허관리를 엄격히 하지만 정작 의료인을 형사처벌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외과의사회는 “무엇보다 의료는 모든 경우를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질병 그리고 의료행위 이후 나쁜 결과가 발생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는 분야”라며 “입장을 바꿔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사를 형사입건하고 처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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