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행위 특성 외면한 실형 선고, 커지는 '의료사고 특례법' 제정의 목소리

- 의료 행위 특성을 무시한 형사처벌 관행이 이어지면서 의료계는 하루빨리 '의료사고 특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
- 의료사고에 대해 가혹한 판결이 이어지면 의료인들을 위축시켜 의료공급의 왜곡현상을 심화시킬 것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소장폐색환자의 수술 지연에 따른 악결과를 이유로 외과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인정해 금고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법원이 단지 수술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인정한다 주장하면서, 자칫 의료체계 전체가 붕괴될 위험성이 있다며 강한 반발에 나섰다.



◆ 의료행위의 특수성 인정해야
이에 의료계는 수술실 CCTV 의무화에 의료 행위 특성을 무시한 형사처벌 관행까지 이어지며 의료계는 하루빨리 '의료사고 특례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의사회 역시 24일 성명을 통해 수술 여부와 시기에 대한 결정은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기 어려운점을 지적했다.

의사회는 "비단 외과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 등 내과 환자에 있어서도 단지 좋지 않은 결과가 있었다는 이유로 형사적으로 처벌하게 된다면 과연 누가 생명을 다루는 의업에 종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선의로 행한 의료 행위, 특히 중환자를 돌보며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 가혹한 판결이 이어지면 의료인들을 위축시켜 의료공급의 왜곡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료사고에 대해 일률적으로 의료인의 과실 유무를 따져 처벌하는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며 "거듭된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로 인해 생명을 다루는 급박한 의료 현장을 떠나는 의료진이 많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필요한 경우 복수 의료감정이 필요하다"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의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을 배제하는 법적,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의학적 판단을 존중해야
의사회는 향후 법원의 판단에 대해 신중한 판결을 내려달라며, 법적·제도적 개선도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수술 여부 및 그 시기 결정에 있어 명확한 임상 지침이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직접 환자를 진찰한 의사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종합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어 현장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는 의학적 원칙이 확립돼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한 의사의 결정은 존중돼야 하며, 이후 발생한 악결과를 이유로 당시 의학적 판단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의협의 입장을 밝혔다.

또 의협은 "환자와 의사가 모두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수술에 앞서 보존적 치료를 우선 시행하기로 합의 한 바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사후에 약결과만을 문제 삼아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부정되고 환자의 상태 악화에 대해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면, 모든 의사들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방어진료를 하게 될 것이라는 의협의 판단이다.

법적 책임을 오롯이 감내하면서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권유할 의사는 찾기 어려워질 것이 자명하다고 경고했다.


◆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 촉구
의협은 의학적 판단을 경시하고 법의 잣대만으로 판결한다면, 국내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체계의 붕괴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도 우려했다.

의협은 "의사의 소신진료가 위축되고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체계가 붕괴되는 사태를 지켜볼 수 없다"며 "국회 와 정부는 가칭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에 즉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협이 언급한 '의료분쟁특례법' 아이디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한개원의협의회가 제안해왔던 '의료사고처리 특례법'과 궤를 함께 한다.

해당 법은 의료법에 따른 의료행위 중 업무상과실로 의료사고를 일으킨 의료인에 관한 형사처벌의 특례를 정하는 것으로,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금 전액을 보상하는 종합공제에 가입해 환자의 피해 보장을 확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로써 의료사고로 인한 보건의료인의 전과자 양산을 방지하고, 보다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 정형외과의사회도 우려의 목소리
한편, 정형외과의사회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료인의 과실 유무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문화, 검찰·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치료 과정에서 결과만 나쁘면 의사를 처벌하는 것이 관례가 돼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수술이나 시술하는 의사들은 잠재적 범죄자와 다름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형사처벌 빈도가 매우 높은데 이번 판결은 정상적인 의료 행위도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이 가능하게 하므로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고 호소했다.

또한 재판부를 향해 "재판부가 엄격한 증거에 의거해 판단했을 것이나, 의료진들이 항상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며 적절한 치료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므로 다시 한번 재판부의 혜량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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