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변호사법 위반 가능성…법적 지위 불분명한 제도”
의료계 “조정의 준소송화 우려…현장 부담만 가중될 것”
의협 “전시행정에 불과…중복 지원에 국가 예산 투입은 부적절”
정부가 의료분쟁 조정 절차에 ‘환자 대변인’을 공식 참여시키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히자, 법조계와 의료계에서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적 정당성은 물론 의료 현장의 실질적 부담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의료분쟁 조정 환자 대변인 사업’ 추진 계획을 공개하고, 오는 4월 30일까지 관련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을 대변인으로 위촉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환자 측에 변호사를 지정해 조정 절차 전반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대변인은 감정, 조정 과정에서 환자에게 법률 자문, 자료 준비, 쟁점 분석 등을 지원하게 되며, 조정 1건당 70만 원, 중재 1건당 100만 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그러나 제도 시행을 앞두고 법조계에서는 해당 대변인의 법적 지위가 불명확하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변호사법은 법률사무에 대한 대리·자문을 오직 당사자와 직접 관계된 변호사에게만 허용하고 있으며, 제3자적 입장에서 이뤄지는 조력은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환자 대변인은 조정에 참여하지만 당사자도, 정식 대리인도 아닌 위치로 법적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다”며 “결국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없고, 제도 자체가 변호사법 위반 소지까지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환자 입장에서도 실질적인 보호를 기대하기 어려운 허울뿐인 조력자에 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의료분쟁 조정은 본래 간소하고 비대립적인 해결 방식이지만, 여기에 변호사가 공식적으로 개입하면서 절차가 사실상 ‘준소송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의료진 역시 조정 단계부터 법률적 방어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며, 결과적으로 방어 진료가 확대되고 고위험 진료는 기피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분석이다.
한 대학병원 원장은 “환자에게만 법적 조력을 제공하면서 절차의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조정이 아니라 소송에 대비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고, 이는 의료 현장의 신뢰를 저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미한 분쟁까지 조정 단계로 유입되면, 의료기관의 행정적·법적 대응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도 비판에 가세했다. 의협은 이미 시민단체 등을 통해 환자 법률 지원이 일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제3 지위를 창설해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의협 전성훈 법제이사는 “제도 도입 취지는 이해하지만 실효성보다는 보여주기식 행정에 가깝다”며 “법적 권한이 불분명한 대변인 제도는 조정의 자율성과 중립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 이사는 “공공 자원을 투입해 기존에 존재하던 지원 구조를 중복시키는 것은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이며, 실질적인 제도 개선보다는 갈등만 조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새롬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