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 반대에 입을 모으는 의료계

- 간호법은 보건의료체계 붕괴를 불러오는 것은 물론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 범위를 초과
- 간협 외 모든 보건의료단체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특정 직역만을 대변하기 위한 시도를 철회하고 함께 논의하길 바란다고 주장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의료계 내부의 갈등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 청원이 청와대 답변 기준인 동의 20만 명을 눈 앞에 둔 가운데 간호계는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와 정부에 촉구하고 있지만, 의료계 단체들은 잇따라 반대 성명을 내며 힘을 모아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역 간 소통이 우선

지난 10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특정직역의 이익만을 위해 간호법안을 제정하는 것은 너무도 불합리한 처사”라고 주장하며 즉각 철회 촉구에 나섰다.

의사회는 “코로나19 사망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국민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여기에 의료인들은 헌신적인 봉사 정신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직종을 막론하고 의료인 모두가 ‘원팀’이 돼 감염병으로부터 환자를 살리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야할 때”라며 “본연의 사명을 저버린 채 이익을 위해 거리로 나가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의사회는 의사 면허관리 체계를 중심으로 독립법이 구성된 이후 국내 간호법 제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의료계는 국회에 발의된 간호법 제정안에서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의 업무로 규정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에서 ‘보조’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대신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한 부분은 삭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간호사의 위임 진료로 인해 무면허 의료행위(PA)를 많이 하는 병원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의사 등의 지도하에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규정될 경우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넓게 해석할 수 있어 결국 무면허 의료 행위를 처벌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의사회는 “코로나19로 인한 급박한 상황 등 의료현실을 고려했을 때 단독 간호법을 제정한다고 해서 간호사의 근무여건 문제가 즉시 해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 위기상황을 직접 타개할 수 있는 대책 또한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단독법 제정은 직역 간의 소통이 우선 이뤄진 이후에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간호법은 보건의료체계 붕괴를 불러오는 것은 물론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 범위를 초과한다”며 “간호사의 근무 환경에만 초점을 둔 간호법안은 다른 보건의료인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불평등을 조장하므로 정부는 간호사법을 반대하고 있는 모든 직역의 의견에 귀 기울여 달라”고 촉구했다.


◆ 대한영상의학회, 의료인 간의 분열과 갈등 조장 위험
대한영상의학회도 11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의료행위는 모든 보건의료인의 상호 유기적인 협력으로 시행되고 있다"며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에만 초점을 둔 간호법안만을 제정해달라는 요구는 다른 보건의료인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불공정 논란을 야기하게 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전체 보건의료인의 지속적 방역대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근무환경의 개선과 처우개선이 아닌, 특정 직역의 이익만을 위한 졸속 법안통과로, 의료인 간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과연 국민건강을 위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특정 직역에 대한 법이 아닌,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모든 보건의료인에 대한 구체적 지원 법안이 시급하다. 분쟁의 단초가 될 간호법 제정에 대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의료체계 근간을 흔드는 법안은 지양해야
이에 앞선 지난 10일에는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성명을 통해 "간협은 더는 간호사 처우개선이라는 허울 뒤에 숨지 말라”며 간호법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대공협은 “간호법의 일부 취지에는 공감하나, 처우개선이라는 명목하에 의료체계 근간을 흔드는 항목을 끼워 넣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처우개선만을 위한 것인지 저의를 의심케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간호계가 도입을 주장한 지역공공간호사나 공중보건간호사제도를 살펴보면 갓 배출한 전문성 없는 단기 간호인력을 희생시켜 지방의료격차를 해결하는 등, 실제 현장 간호사들이 지적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선과는 괴리가 있었다.

당초 단기인력의 지속적 공급은 지방 병·의료원으로 하여금 의료 질 향상을 위한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일 유인을 없애고, 장기적으로 지방의료격차를 해소할 방안이 되지 못함은 도입한 지 40년이 되는 공중보건의사 제도를 통해 증명됐다.

대공협은 “그런데도 신규 간호사를 장기간 의무복무로 내몰아 지방의료격차를 일부 해소해보겠다는 발상이 간호사의 처우개선만을 위한 것”이냐며 “정녕 그렇다면 보건의료계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음에도, 어떤 직역과도 논의하지 않은 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조항을 끼워 넣어 분열을 조장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재 간호사 업무범위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고 있어 합법화를 통해 간호사의 역할·책임을 명확히 하겠다는 제정 목적에도 우려를 표했다. 보건의료인의 희생으로 지탱해온 기형적 의료체계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아닌 법의 보호 아래 구조적 문제를 존속하겠다는 의지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대공협은 “우리는 숙고와 논의를 거치지 않은 성급한 시도가 초래하는 위험을 알고 있다”며 “쫓기듯 추진된 ‘한시적 비대면진료’가 어떠한 제약이나 가이드라인 없이, 위험성이 큰 약들이 무분별하게 처방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한시적 조치가 아니라 한 직역만을 위한 독자법 제정 요구”라며 “보건의료체계는 다양한 직역들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유지된다. 간협 외 모든 보건의료단체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특정 직역만을 대변하기 위한 시도를 철회하고 함께 논의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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