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발방지를 위해 의료인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시급한 상황
- 응급의료현장의 폭력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이고, 응급의료인들에게 폭력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
최근 응급실에서 사망한 환자의 보호자가 낫으로 의사의 뒷목을 베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자, 의료계는 가해자 엄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일제히 격분하고 나섰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용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70대 여성 환자가 이미 심정지 사망 상태로 온 상태에서 보호자인 75대 남성이 불만을 품고, 15일 미리 준비한 낫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뒷목을 찍었다. 낫에 뒷목 부위를 10cm 이상 베인 응급의학과 의사는 생명에 지장은 없었으나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사전에 담당 의사의 진료 일정을 확인하고 선물을 주고 싶다며 응급실에 들어간 뒤 낫을 휘두른 ‘계획적인 살인미수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료계는 재발방지를 위해 의료인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보호자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된 아내에 대해 의사가 미흡하게 조치했다는 불만으로 범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처음 이송된 당시에도 진료현장에서 난동을 피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구속된 피의자를 상대로 자세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이에 수원지방법원은 16일 살인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보호자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의료계는 이번 사건을 접하자 가해자 엄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표출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곧바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당시에 난동을 제압하고 법적인 격리조치를 미리 취했다면 이런 불상사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라며 "아직도 우리 사회는 환자와 보호자를 무한한 온정주의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로, 망자의 보호자가 설령 난폭한 행동을 보인다 하더라도 단지 일시적 감정의 표출로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을 것이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더라도 법적 조치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살해의도가 가득한 낫질이었다"고 한탄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의료현장의 폭력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이고, 응급의료인들에게 폭력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언어폭력, 성희롱과 같은 정신적인 폭력까지 생각하면 하루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 이런 일들이 보도될 때마다 과도한 호기심과 자극적인 문구들만 난무할 뿐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적절한 해결책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응급의학의사회의 입장이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지금까지 여러 번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고 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도 계속 높아졌다. 거기에 형량 하한제, 심신미약 무관용 원칙 등 다양하고도 강력한 조치들이 발표됐지만, 실제 진료현장에서 느끼는 안전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오히려 처벌이 강화되다 보니 경찰이나 검찰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입건하는 자체를 꺼려고, 이는 응급의료인에 대한 폭력이 발생해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응급의료현장은 높은 긴장과 불안상태에서 항상 긴박하게 돌아가는 곳이기에 병원 내의 다른 장소보다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장소"라며 "또한 폭력이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단지 피해자인 의료인에 그치지 않고 현장의 모든 응급환자들에 영향을 미친다"라며 근본적인 해결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의사는 진료현장에서 선의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다해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지,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라며 "그런데도 이런 참혹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의사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으며, 최소한의 기본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밝혔다.
소청과의사회는 "이런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 해야 할 국회는 의사면허 강탈법 강제 통과 따위로 의사들을 잠재범죄자 취급하며 억압할 생각 하지 말고, 실제로 칼과 낫을 들고 의사들 죽이려고 달려드는 이런 강력 범죄에 대한 근본적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청과의사회는 "이번 사건 같은 살인 미수 범죄로 언제까지 의사들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진료를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급할 때는 공공재라고까지 했으면 의사가 위엄있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는 그만한 대우와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보호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를 많이 만들어 낼 생각 말고 이미 있는 의사들부터 환자 생명 구하는 데만 전념할 수 있게 지켜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용인시의사회도 성명을 내고 사건 당시 의학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하며 “가해자는 피해 의사의 근무시간을 확인하고 사과의 의미로 음식을 준비하는 치밀한 계획 하에 접근해 무방비 상태의 배후를 습격했다”고 지적했다.
용인시의사회는 “생명 존엄성을 무시하고 계획적으로 목숨을 노린 중대 범죄를 엄중히 처벌하라”며 “정부는 의료진의 안전 확보를 위한 재정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용인시의사회는 또 “의료기관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정이 필요하다”며 “중앙 정부 차원에서 예산 편성이 어렵다면 각 지자체 차원에서 지역 의료기관의 안전을 위한 예산을 배정해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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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