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가 급락에 집주인들 ‘공포’... 11월 서울 전세가율 53.9%
- 내년초 입주 ‘개포프레지던스’ 17억→8억 매물 쏟아져
전월세 계약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연초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값이 무섭게 떨어지고 있다. 전세금 반환을 둘러싸고 임차인과 집주인 간의 다툼이 급증하고 있고, 입주 잔금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는 수분양자도 덩달아 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값이 매매값에 비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은 지난달 53.91%까지 급락했다. 전세가격이 곤두박질쳤던 10년 전 수준에 가까워졌다.
13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와 송파구 파크리오 등 강남권 주요 대단지에서 직전 실거래가보다 2억~3억 원씩 급락한 전세 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파크리오 전용면적 84㎡는 이달 전세금 9억 5,000만 원에 거래됐으나, 현재 7억 6,000만 원의 급전세 물건이 나와 있다. 단지 내 A공인 관계자는 “단지에 전세 매물이 30~40개가 나와 있는데 집을 보러 오는 발길은 뚝 끊겼고, 가끔 오는 손님은 월세만 찾는다”고 했다.
6,864가구 규모인 이 단지의 지난달 전·월세 거래가 작년에 비해 20% 이상 줄어든 78건에 그쳤고, 절반이 넘는 41건이 월세·반전세였다. 전세 거래가 안 되다 보니 집주인과 임차인의 다툼도 늘어나고 있다. 신천동 T공인 관계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세금을 돌려달라’는 임차인과 ‘돈이 없는데 어쩌냐’는 집주인이 언성을 높이고 다툰다”며 “2년 전 11억~12억 원(전용 84㎡)의 전세금을 받았던 집주인들은 돈을 돌려주려고 생활자금대출을 받는 일이 흔하다”고 전했다.
최근 2~3년 사이 전세가 급등한 강남권 아파트 전반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반포자이 전용 84㎡는 지난 9월 21억 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으나 이달 들어 14억 원까지 내리더니 최근엔 12억 5,000만원짜리부터 13억원대 전세 매물 수십 개가 쌓였다.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연초 3만 1,173건 수준이던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지금은 70%가량 늘어난 5만 3,743건에 달한다.
내년 초 입주하는 3,375가구 규모 서울 강남구 개포자이프레지던스 단지에선 전세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려는 수요 때문에 저가 물건이 쏟아지고 있다. 17억 원에 나왔던 전용 84㎡ 전세가 입주가 임박해오면서 8억 8,000만원까지 떨어졌고, 59㎡는 6억 5,000만원까지 하락했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급락한 것은 최근 수년 사이 치솟은 전셋값이 실수요자가 감내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연 3%대였던 전세자금 대출 금리가 올 들어 연 5~6%대로 오른 데다 임대차 3법 시행으로 4년 전에 전세 계약을 했던 세입자들은 급등한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포동 B공인 관계자는 “자녀를 다 키운 기존 전세입자들은 전셋값이 낮은 주변 단지로 이사가는 사례가 많다”며 “새로 이사오려는 사람도 연 5%가 넘는 전세대출 금리와 비교하면 전·월세 전환율 3~4%대인 월세가 유리하기 때문에 전세 물건은 외면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역전세난을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부동산 상승기에 늘어난 전세자금 대출을 지목했다. 2012년부터 정부가 보증을 확대하는 등 전세금 대출을 활성화한 결과, 23조원 규모에 불과하던 금융권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작년 말 180조 원까지 급증했다. 강민석 KB금융 경영연구소 부동산팀장은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강화하면서도 전세금 대출 지원은 확대하면서 갭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전셋값과 집값이 동반 상승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전셋값은 내년까지 더 하락하면서 집값도 함께 끌어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은 “과거엔 집값이 많이 떨어지면 무주택 전세입자들이 대출을 끼고 집을 살 여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미 전세금에 대출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며 “금리가 하락하기 전까지는 전셋값과 집값이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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