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악의 인명피해... 21세기 들어 8번째로 사망자 많아
- “골든타임 촉박” 위기감 고조... 튀르키예 정부 늦장 대응에 시민 ‘분노 폭발’
- ‘미국·유럽 제재’ 시리아는 상황 더 어려워 구조활동에도 차질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악의 인명피해를 내고 있다. 추운 날씨로 인해 생존을 위한 골든타임은 끝나가는 가운데, 도로 파과와 구조인력 부족 등 인프라 붕괴로 인해 구조작업에 큰 차질이 생기고 있다.
레제프 타이에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지진 발생 사흘째인 8일(현지시간) 이번 지징느오 인한 사망자가 9,000명을 넘겨 1만 2,391명, 부상자는 5만 2,979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국경을 맞대로 있는 시리아에서 당국과 반군 측 구조대 ‘하얀 헬멧’이 집계한 사망자 3,000여명을 더하면 1만 5,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AFP 통신 등 주요 외신은 이번 튀르키예 강진은 지금까지 인명피해만으로도 21세기 들어 8번째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지진이라고 전했다. 7번째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1만 8,500명)으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튀르키예 지진 인명피해가 이를 넘어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지진의 사망자가 2만 여 명이 넘을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으며, 미국 지질조사국(USGS)는 이번 지진의 사망자가 10만 명 이상 될 가능성이 14%정도로 낮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속에서 72시간까지를 인명구조의 ‘골든타임’으로 본다. 매몰되거나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이 3일까지는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영국 노팅엄트렌트대의 자연재해 전문가인 스티븐 고드비 박사는 "생존율은 24시간 이내에는 74%에 이르지만 72시간이 지난 뒤에는 22%로 뚝 떨어진다"며 "닷새째 생존율은 6%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6일 새벽 발생한 첫 지진을 기준으로 한다면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튀르키예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특히 당국이 징수하는 지진세가 도마 위에 올랐다. 주민들은 "1999년 이후 걷힌 우리의 세금이 도대체 어디로 갔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AFP는 튀르키예가 그간 지진세로만 총 880억리라(약 5조9천억원)를 걷은 것으로 추정했다.
20년째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는 5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성난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그는 이날 지진 피해 현장을 직접 찾은 뒤 "지금 필요한 것은 단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도로와 공항에 문제가 있었지만, 오늘 개선됐다"며 "아직 연료 공급 문제가 남아 있지만,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미흡한 지진 대응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튀르키예 당국은 트위터 접속을 차단하는 등 여론 통제에 나섰다.
단시간에 사망자가 쏟아지면서 가장 큰 피해 지역 중 하나인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한 병원 건물 바깥에선 수십 구의 시신이 땅에 줄지어 누워 있는 참혹한 광경도 목격됐다.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시신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발견 후 5일 이내에 매장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래의 신원 확인을 위해 DNA 검체, 지문은 채취한다고 AFAD는 설명했다.
시민들은 다시 올지 모르는 지진이 두려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거리로 내몰린 시민들은 자가용 차량에서 밤을 보내고, 노숙하며 추운 겨울밤을 지새우고 있다. 튀르키예의 보르사 이스탄불 증권거래소가 지수 급락을 막기 위해 24년 만에 주식시장 거래를 중단하는 등 강진이 튀르키예 경제에 미친 충격파도 만만치 않다.
국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튀르키예와 비교해 내전으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시리아의 상황은 훨씬 열악하다. 서방의 제재를 받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이날 유럽연합(EU)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네스 레나르치치 유럽연합(EU) 인도적 지원·위기관리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회원국들에 의약품과 식량 지원을 권고했다면서 지원 물품이 알아사드 정권에 전용되지 못하도록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가 앞다퉈 지원 의사를 밝히며 전 세계 65개국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우리나라 해외긴급구호대(KDRT)는 이날 오전 튀르키예 남동부 가지안테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구호대는 하타이 지역에서 수색·구조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현재 18개국의 구호대가 하타이주에 와 있다"고 소개했다.
시리아를 적극적으로 돕는 국가는 우방인 러시아와 이란이다. 카타르, 오만, 레바논, 이라크 등 인접 국가에서도 구호 물품이 속속 도착했으며 중국도 지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 해제를 촉구했다. 바삼 삽바그 주유엔 시리아 대사는 "미국과 EU의 제재 때문에 많은 비행기와 화물 수송기가 시리아 공항에 착륙하기를 거부한다. 이 때문에 인도적 지원에 나서려는 국가들도 수송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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