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사간 의료진 과실 기준이 다르다? 같은 사건 민·형사 결과 엇갈려

- 수술 중 환자 사망에 의료진 과실치사·손해배상 민·형사 같은날 선고
- 대법원, 의료진 과실치사죄 파기환송... 민사 병원 배상 책임은 인정
- “과실이 곧 유죄 아니야, 사망 인과관계 ‘의심 없을 수준’으로 증명돼야”

전신마취 수술 도중에 환자가 숨진 사건과 관련해 형사와 민사 소송의 결과가 엇갈렸다. 마취를 담당한 전문의가 기소된 업무상과실치사죄에 대해서는 항소심이 뒤집히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됐으나 환자에 대한 손해배상은 여전히 유지된 채 마무리됐다. 의료진 과실과 환자의 악결과 사이에 인과관계 입증 수준이 형사와 민사가 다를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번에 대법원이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진 과실 입증 책임이 형사 소송보다 민사 소송에서는 비교적 완화하면서 관련 사건의 앞으로 재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수십억대의 손해배상 판결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필수의료 등 의료계 전반에 비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은 전신마취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기소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A씨에게 적용된 업무상과실치사를 인정하지 않고 금고형을 내렸었던 원심을 파기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A씨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이 과실이 피해자를 사망으로 치닫게 했다고 유죄를 선고하기엔 증거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같은날 진행한 이 사건의 민사 상고심에서는 A씨의 과실을 인정해 환자 측에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다.

B씨는 지난 2015년 12월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파열 등으로 C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됐다. C병원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인 A씨는 수술 당일 오전 10시 15분경 전신마취와 부분마취를 진행했고, 42분경 간호사 D씨에게 상태를 지켜보라고 한 뒤 수술실을 먼저 빠져나왔다.

11시부터 시작된 수술에서 B씨는 갑작스럽게 저혈압 및 산소포화도 하강 증세를 보였고, 간호사의 호출을 받은 A씨가 돌아와 에피네프린 등 긴급조치를 시행했으나 회복세를 보이지 못했다. 결국 수술이 중단된 뒤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곧바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됐으나 응급실 도착 직후인 오후 1시 33분경 사망했다. 이후 부검 결과 정확한 사인은 판명되지 못했다.

검찰은 해당 사건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인 A씨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했고, 그 결과로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며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마취 환자 감시 업무를 2~3개월차에 불과했던 간호사에게 맡기고 간호사의 긴급호출에도 즉시 수술실로 향하지 않는 등의 과실을 지적한 것이다.

B씨는 마취 시술 후 수술 시작 직전에도 2번의 혈압이 저하되는 등 저혈압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었다. 이에 간호사 D씨는 활력징후 감시장치 경보를 확인하고 총 4차례에 거쳐 A씨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A씨는 수술 직후였던 11시 경의 전화는 받지 않았고, 13분, 17분 경의 전화를 받고 수술실로 돌아와 20분경 혈압 상승제를 투여했다.

해당 사건에 유죄를 선고했던 2심 재판부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인 A씨는 간호사에게 환자 감시 업무를 맡기고 다른 수술실을 옮겨다니며 다른 환자 마취 시술을 시행했다. 간호사 호출을 받고도 신속히 수술실로 가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등 마취 중 환자 감시와 신속한 대응 업무를 소홀히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이 판결이 뒤집혔다. A씨가 업무상 과실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이것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업무상 과실치사를 인정하기 위해선 인과관계가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업무상 과실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것이 곧 인과관계의 추정 또는 증명 정도가 경감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의사의 업무상 촤실치사상죄를 인정하기 위해선 우선 의료행위 중 업무상 과실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환자가 상해를 입거나 사망에 이르는 등 악결과가 발생했다고 입증할만한 엄격한 증거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을 정도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환자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혈압 저하 증상을 보이다가 사망했다. 그러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A씨가 환자를 직접 관찰하거나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신속히 수술실로 가서 대응했다면 어떤 조치가 더 가능했을지, 또 그런 조치로 인해 환자가 심정지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가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A씨가 환자를 직접 관찰하다 심폐소생술 등 조치를 곧바로 시행했다면 환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증명도 부족하다”며 “A씨의 업무상 과실로 환자가 사망했다고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 재판부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A씨에게 업무상과실치사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해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했다.

반면 같은 날 열린 민사 상고심에서는 병원 측에 손해배상 책임을 최종적으로 인정했다. 형사재판에서 과실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에 있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할 것을 요구한 대법원은 민사 재판에서는 ‘개연성’이 증명되는 수준이라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전보다 민사 소송에서의 환자 측 증명 책임을 완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탓에 환자가 의료진의 괴실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고, 현대 의학의 지식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진료상 과실과 환자가 입은 손해 사이 인과관계에 대해서 환자는 물론 의료진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가 의료행위 당시 임상에서 실천하는 의료 수준에서 의료인에게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주의의무 위반, 즉 진료상의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가 있다고 증명하고 그 과실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개연성을 증명한다면 인과관계의 증명 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때 손해가 발생했다는 개연성이 형사재판처럼 꼭 의학적 측면에 있어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될 필요성이 없다고도 했다. 다만 과실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의학적 원리 등에 부합하지 않거나 막면한 가능성 수준에 그칠 경우에는 증명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A씨의 과실로 인해 환자가 사망했다는 개연성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만약 A씨가 간호사 호출에 신속하게 대응해 보다 빠르게 혈압 회복 등 조치를 취했다면 환자가 회복했을 가능성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병원이 환자 B씨 사망이 진료상의 과실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고 증명하지 않는 한 진료상의 과실과 환자 사망 간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병원 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환자 측에 손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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