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수술 당일’은 설명의무 위반 설명... 의료계 “모든 소송에서 패소하는 지위”

- 자가부위 코 재수술과 내시경이마거상술 받은 뒤 탈모 등 부작용 시달리다 손해배상 청구
- 서울중앙지법, 설명 후 시간적 여유 주지 않았다면 설명의무 위반... 위자료 선고
- 성형외과醫 “이 판결이 설명의무 위반 기준되서는 안 돼”

법원이 병원 측이 환자에게 수술 위험성과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설명하고 동의서까지 받았지만 설명의무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재판부는 수술 당일 설명을 해 환자가 고려해볼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의료계는 당일 진료를 통해 간단한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해할 수 없는 기준을 법원이 내세웠다고 반발하고 있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중앙지법은 성형외과 전문의 A씨를 상대로 환자 B씨가 제기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위자료 300만 원과 지연 이자를 A씨가 B씨에게 지급하도록 선고했다. 수술을 담당했던 A씨가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B씨는 지난 2020년 6월 A씨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자가연골을 이용한 코 부위 재수술과 내시경적 이마거상술을 받았다. 그러나 B씨는 수술 후 탈모 등 부작용을 호소했고 이에 A씨는 지방이식수술과 주사 치료 등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부작용이 계속 이어지자 B씨는 A씨가 수술 중 과실을 저질렀다며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이마거상 수술 부작용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총 9000만 원 규모의 배상액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설명의무 위반을 일부 인정하며 A씨 측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마거상술에서 영구적인 탈모는 흔하게 발생하는 부작용 중 하나이기에 의료진 과실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우나 A씨가 ‘수술 당일’에 설명했다”며 “수술을 행할 때까지 적절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이 점을 설명하거나 환자가 부작용을 인지한 생태에서 숙고를 거쳐 수술을 경정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언급한 ‘적절한 시간적 여유’는 구체적인 법령이나 지침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안이다. 다만 지난 2022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의료행위 내용과 방법, 그 의료행위의 위험성과 긴급성의 정도, 의료행위 전 환자의 상태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된 바 있다.

이번 사건의 환자 B씨는 수술 전 여러 차례 상담을 받았고 수술 직전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까지 했으나 집도의인 A씨가 탈모 등의 부작용에 대해 주의사항을 강조하고자 직접 가필을 하는 등 구체적인 설명을 듣긴 했으나 이를 수술 당일에 진행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수술을 앞두고 B씨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아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으며 B씨가 수술로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 등 위험성을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 채로 수술이 진행됐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수차례 상담 과정에서 사전에 영구적인 탈모 등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하고 B씨에게 숙고할 기회를 줄 수 있었다”고 판결했다.

다만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하더라도 환자가 반드시 수술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고 설명의무 위반과 수술 후 후유증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배상 책임을 환자의 선택 의무 침해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의료계가 우려를 표명했다. 설명의무의 시점을 문제 삼은 이번 판결이 다른 소송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7일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은 “모든 의료인이 모든 의료소송에서 패소할 수 밖에 없는 기형적 지위에 놓인 셈”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성형외과의사회는 “대부분의 수술이 당일 외래를 거쳐 결정되고 수술을 마치면 약간의 회복 시간을 가진 뒤 퇴원 절차를 밟는다”며 “‘수술 당일’은 환자가 수술을 결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고 한 이번 판결은 의료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 의학은 환자의 자율권을 중시한다. 특히 미용 목적 수술의 경우 치료 수술보다도 환자의 자율권을 보장한다”며 “환자가 수술에 미온적인데 의료인이 수술을 종용하거나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술을 받으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이번 판결이 설명의무 위반 여부를 가르는 새로운 판단 기준으로 제시되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형외과의사회는 “이번 판결이 수술 당일 설명은 부적절하다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형외과의사회는 이에 분명한 반대 의견을 천명한다”며 “재판부가 의료법이나 관계 법령에 명시하지 않은 보편적 기준을 세우려면 의료 현장 전문가와 상의해 현장이 납득할만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