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심정지 온 환자 살린 응급실, 영구 장애 입었으니 5억 원 배상” 의료계 분노

- 심정지로 응급처치 받은 환자, 목숨 건졌지만 뇌손상 입어
- 법원, 의료진 과실 인정해 5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 응급의학과 “15분 진료기록 빈다고 과실 인정? 응급의료 의료진, 전부 잠재적 범죄자”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심정지로 응급처치를 받은 후 뇌손상을 입은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의료진 과실을 인정하고 수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려 의료계가 분노하고 있다. 법원은 해당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을 지적했으나 의료계는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응급 환자들이 수도 없이 몰려드는 상황 속에서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심폐 소생 등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 자체에 망연자실하는 분위기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인천지법 민사14부는 43살 남성이 대학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하며 학교법인에 위자료 등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5억 7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A씨는 지난 2019년 4월 호흡 이상, 설사 등의 증상을 보이다 인천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 A씨는 병원 방문 일주일 전부터 하루에 10차례 넘는 설사를 보였고, 이틀 전부터는 호흡 곤란 증상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씨는 과거 폐렴 증세로 입원한 적이 있었으며 최근 신장도 좋지 않아 혈액 투석도 고려하고 있던 상태였다.

총체적으로 건강 이상을 보인 A씨는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에도 40도의 높은 체온가 분당 호흡수도 정상 수치(12~20회)를 크게 벗어난 38회였다. A씨는 응급실에 도착한 후에도 급격하게 상태가 계속 나빠지다 의식 불명에 빠졌고 병원 의료진은 A씨에게 마취 시행 후 기관 삽입을 시도했다.

의료진은 이어 인공호흡기를 부착해 호흡을 유도했으나 이내 곧 A씨는 심정지가 발생했고 응급구조사 등 병원 의료진들이 곧바로 흉부압박과 수액 투여 등 심폐 소생을 진행해 다행히 A씨가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A씨는 깨어난 이후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어 반혼수 상태에 빠지게 됐다.

이후 A씨의 아버지는 2020년 5월 변호사를 선임하고 해당 대학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영구적인 후유 장애를 입었다며 총 13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대학병원 의료진이 A씨에게 기관삽입을 한 뒤 경과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다는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주의의무 소홀에 대한 과실로 손해배상 책임의 일부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의료진은 신장 기능이 떨어진 A씨의 상태를 고려해 일반 환자보다 더 각별하게 주의해 호흡수, 맥박, 산소포화도 등을 기록하며 신체 변화를 상세히 관찰해야 했다”며 “그럼에도 의료진은 기관 삽관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심정지를 확인한 15분동안 A씨의 상태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거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당시 A씨의 호흡수가 증가하고 의식도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 기관 삽관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인정하기엔 명확하지 않다”며 “병원 의료진이 A씨의 심정지 이후 뇌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금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의료진 과실을 일부 인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인 ‘신체기록 관찰’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 사항은 응급실 의료진의 A씨에 대한 모니터링에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이며 응급실 접수 이후 약 15분 가량의 진료기록이 없다는 것이 그 근거로 작용했다. 즉 응급의료진들이 15분 가량 A씨에 대한 진료기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정황만으로 의료진이 A씨에 대한 모니터링을 소홀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에 의료계는 크게 분노하고 있다.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응급실에 방문한 환자를 즉시 ‘대동리박리’로 진단하지 못해 실형을 판결 받은 사건과 더불어 연이은 응급실 관련 엄격한 판결에 우려를 크게 표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이번 사건은 굉장한 무리가 있는 판단이다. 상태가 악화된 상태에서 응급실에 환자가 방문했고, 의료진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실을 볼만한 행위 없이 환자 모니터링을 하지 않아 환자가 나빠지는 것을 몰랐던 것 아니냐는 과실을 진정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에 대한 15분 가량의 진료 기록이 없다는 것이 근거로 작용한 모양인데, 쉬지 않고 몰려드는 응급 환자 속에서 의료진이 한 명씩 속기사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닌 이상 어떻게 매 순간마다 진료기록을 남길 수 있겠는가”라며 “응급의료 현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상적인 진료만 요구하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의료소송이 제기되었을 때 환자 측의 의료진의 과실을 증명해야 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에는 의료진이 의료과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분위기로 변화하고 있다”며 “현실에 맞지 않는 사법부의 판단은 결국 소신껏 진료하는 의사들을 위축시키고 현장 이탈을 종용하고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응급현장에서 근무하는 한 종사자도 “응급실에는 명확한 원인을 판단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하루에도 무수히 많이 들이닥친다. 해당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지 1시간도 채 되기 전에 심정지가 발생했고, 심정지가 발생한 것으로 아는데 응급환자를 받아 심폐 소생 등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한 의료진에게 과실이 있다고 판결한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며 “이제 언제 어떻게 경과가 나빠질지 모르는 응급환자는 병원에게 시한폭탄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응급실은 이제 더욱 더 방어진료만 하게 될 것이다. 다른 응급환자가 대기하는 상황에서도 이제 그럼 의사들은 모두 진료기록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라며 “최근에는 응급환자를 거부하지 못하는 법까지 생겼으니 이제 응급의료 의료진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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