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계획과 도전
의료현장에서 전문의 중심 병원의 현실 가능성 논란
이해관계자들의 우려와 추가 논의 필요성
정부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의료기관의 인력구조를 전문의 중심으로 개편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 추진으로 인해 의료 현장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에 따른 재정 확보 문제와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전공의 수련 문제를 포함해 실현 가능성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5월 31일, 한국보건행정학회는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2024 전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는 '필수의료 인력공급 혁신 가능한가?'를 주제로 한 세션이 열렸고, 전문의 중심 병원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대한의사협회 이세영 보험이사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전공의들이 너무 말을 안 들으니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자는 말로 들린다"며 "단순히 전공의 힘을 빼고 전문의 위주로 가려 한다면,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수 있어 쉽게 접근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병원 이비인후과에서 두경부암 환자를 진료하는 이세영 이사는 "전국에 두경부암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의가 100명 정도인데 상급종합병원은 46곳이니 한 병원당 2명이 조금 넘는 셈"이라며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된다면 앞으로 두경부암은 상급종합병원 20곳에서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전문의) 조절은 어떻게 할 것인지 모르겠다"며 우려를 표했다.
의대 정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경우 현 의료체계 내에서 의대 졸업생들의 수련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최병호 교수는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가는 방향성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려하는 점은 대부분 의대 졸업자들이 전문의가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전문의 중심 병원에 수련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많이 배출된 의대생들을 누가 흡수할지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환자들은 3차 대학병원을 선호한다. 이를 정부가 막거나 인식이 바뀌어 동네 종합병원이나 일차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관행이 생기지 않는 한 정부의 생각과 다르게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결국 상급종합병원들이 전문의를 더 많이 뽑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간호 인력도 더 많이 뽑아 병원의 규모는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오히려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 더 집중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 교수는 "정부가 추구하는 개혁이 어느 정도 학회 전문가 등의 의견을 반영하고 커뮤니케이션 되는 과정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열띤 토론이나 커뮤니케이션 없이 전문의 중심 병원을 추진하겠다고 갑자기 발표해 혼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의사협회나 대한병원협회에도 정책 기능을 하는 곳들이 있다. 앞으로도 열띤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전문의 중심 병원 추진이 전공의 집단사직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김한숙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지난 15년의 역사가 의료 보장성 강화의 시대였다. 비용 효과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가성비' 좋은 의료 시스템을 지향하고 국민 의료비 경감이 화두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가장 먼저 바라보는 시각은 병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었다"며 "전공의 이탈 문제 때문에 새롭게 불거진 문제로 회자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정부가 정책을 하려면 예산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예산을 따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복지부에서 지역의료 발전기금과 필수의료 특별 회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법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준비 단계에 들어가 있다. 정부가 이번에는 투입하는 비용까지 고려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은 전문의 중심 병원 논의가 전공의 근로시간을 줄여 수련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의 비율을 늘리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강민구 전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전문의 중심 병원은 대전협이 정책 제안 문건으로 처음 제시한 내용인데, 정책 목표와 개념이 왜곡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며 "전문의 비율을 늘리라는 게 전문의 중심 병원이다. 전공의를 착취하지 말고 전공의 근로시간을 줄여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강 전 회장은 "전문의 법정 비율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전문의를 어떻게 고용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만들 것인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난도 보상만으로는 병원에서 전문의 채용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료 현장에서 전문의 인력 확보에 따라 진료지원인력(PA)이나 간호 인력 채용이 늘어날 경우, 오히려 전공의 지원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강 전 회장은 "PA를 고용하면 기존 일하던 사람들은 편하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공의 지원율은 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전문의 중심 병원 추진은 의대 정원 증원, 전공의 수련 문제, 의료전달체계의 개선 등 다양한 이슈를 동반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성공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커뮤니케이션과 합의를 이루어내야 하며, 국민의 의료 이용 패턴 변화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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