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내과 의사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 원심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환송
의료 과실 입증책임 문제, 의사에게 과도한 부담 전가하지 말아야
의료진 위축 방지 위해 "당시 의료 상황 종합 고려해야" 신중한 판단 강조
최근 9개월째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병원과 학교를 이탈해 의료 공백이 생긴 가운데, 대법원이 의사의 업무상 과실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요구하며 잇따라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려 의료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의료 과실 소송에서 의사들의 책임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의료적 상황과 당시의 진료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대법원의 입장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기소된 내과 의사 A 씨에 대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환송했다. A 씨는 2016년 10월 고열과 복통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 B 씨를 진찰했으나, 급성 감염증 가능성을 배제하고 단순 장염으로 진단해 약만 처방했다. 이후 B 씨는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다음 날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가 급성 감염증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소홀히 하고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 씨의 진단이 잘못되었고, 적절한 항생제 투여가 이루어지지 않아 B 씨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 역시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은 임상적으로 드문 일이 아니며, 이러한 상황에서도 의사로서 증상 악화를 예견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했다"며 A 씨의 과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A 씨는 "당시 B 씨의 맥박과 체온 등 주요 활력 징후가 모두 정상 범위에 있었기 때문에 급성 감염증을 단정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며 상고했고, 대법원은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당시 B 씨의 활력 징후가 안정적이었고, 추가적인 감염 소견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응급 조치나 입원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의사의 주의 의무 이행 여부는 당시의 의료 수준과 현장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원심이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A 씨의 과실을 단정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환자의 사망 결과만을 근거로 무조건적으로 의사의 업무상 과실을 추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는 의료 소송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판단할 때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의료 소송 전문가인 이인재 변호사(법무법인 우성)는 "하급심에서는 의사의 업무상 과실을 비교적 쉽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법원에서는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 더 엄격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사 면허가 취소되는 만큼, 의료 과실 사건에서는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엄격한 증명이 있어야 유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입장을 대법원이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최근 의료사고 관련 민사 소송에서도 의료진의 과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지난 9월 27일 대법원 민사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환자가 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해당 사건은 척추 수술을 받은 환자가 감염 증상으로 인해 수술 집도의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었다. 대법원은 "의료진의 과실과 감염증 발생 사이의 개연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으며, 설령 수술 부위의 감염이 원인이라고 해도 이를 근거로 의료진의 과실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대법원의 잇따른 파기 환송 판결은 의료 과실 사건에서 의사에 대한 입증 책임 전가 문제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방 소재 법원의 한 판사는 "그동안 일부 의료 과실 사건에서 의사에게 과도하게 입증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입증 책임의 전가가 반드시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각 사건의 사정에 따라 판결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대법원의 전체적인 기조가 바뀌었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의 판결은 각 사건마다 사안별로 신중히 판단한 결과일 뿐, 전체적으로 판결 기조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언급했다. 다만 "의료 과실 사건에서 무조건적인 과실 추정보다는 좀 더 신중하고 세밀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대법원의 메시지가 조금씩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진의 진료 행위와 관련한 법적 책임의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앞으로의 판례에서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들은 의료 과실 사건에서 의사의 책임을 보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진들이 진료 과정에서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고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의료계와 법원이 어떻게 상생하며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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