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여 적정성 판단은 사실상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일이기에 초고가 약일수록 적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워
- 수익을 고려해야 하는 제약사 입장에선 약가를 낮추지 않으려 할 것이라, 다른 면역항암제의 급여 확대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가 3월 1일부터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에 급여가 됐다. 2017년 9월 폐암 1차 치료 급여 신청을 한 지 무려 5년 만이다. 키트루다는 이번 급여 확대로 1차 치료제 급여권 진입에 최초로 성공한 면역항암제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이에 따라 4,000여 명의 폐암 환자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돼 연간 1억 원에 달하던 치료비가 350만 원으로 대폭 줄었다.
키트루다 1차 치료제 급여 확대는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 키트루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비싼 약값이 걸림돌
키트루다가 보험급여 확대를 처음 신청한 2017년에도 1차 치료제로서의 유효성은 근거는 충분했지만, 폐암 1차 치료제로서 보험급여 확대에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비싼 약값에 원인이 있었다.
키트루다는 임상시험(KEYNOTE-189, KEYNOTE-407, KEYNOTE-024)을 통해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사용할 경우, 환자의 전체 생존기간(OS)을 2배 이상 연장할 수 있음을 입증한 바 있다. 위의 임상시험에서 키트루다는 무진행 생존기간(PFS)도 수개월 이상 연장할 수 있다는 임상시험 근거를 제출했다. 이 근거들은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등 글로벌 폐암전문가들이 키트루다 병용요법을 최우선 4기 전이성 폐암 1차 치료제(Category1의 '선호요법(Preferred)')로 권고한 바탕이 될 정도로 유효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키트루다의 약값은 그 효과만큼이나 높은 실정이었다. 키트루다 1주(바이알) 비용은 283만3278원으로 초고가에 속한다. 주기적으로 투약해야 하고, 표적항암제에 비해 장기적으로 사용하는 면역항암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키트루다 투약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 가까스로 통과된 급여 적정성 인정
급여 적정성 판단은 사실상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일이기에 초고가 약일수록 적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 전반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와 적정한 약값을 받아내고자 하는 제약사 간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줄다리기는 키트루다의 약가를 주당 210만7642원으로 25.6% 인하하는데 양측이 최종 합의하면서 5년 만에 끝났다. 협상 과정에서 MSD는 자사의 대형 품목인 자누비아 등 총 15개 품목의 약가도 최대 77% 인하했다. 키트루다의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트레이드 오프(Trade-Off)'까지 동원된 것이다. 신약의 등재, 혹은 급여 확대를 원하는 제약사가 기존 의약품의 약가인하를 통해 신약 가치를 보전하는 정책방향을 일컫는 트레이드 오프는 이미 2019년부터 신약의 보장성 확대를 논할 때 거론되던 용어다.
인하된 금액을 적용할 경우, 키트루다 1차 치료제 급여 확대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소요는 연 1762억원(건보공단 예상청구액)으로 예상된다. 다만 약가 협상 과정에서 환급제(RSA) 등이 적용돼 실제 연간 재정소요액은 예상청구액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 후속 주자에 관심 집중
우여곡절끝에 키트루다가 1차 치료제 보험급여 확대에 성공하면서 이제 관심사는 '다음 순서는 어떤 약이 되느냐'로 바뀌었다. 하지만 의료계는 당장 두 번째 타자가 나오기는 어렵다 보고 있다. 키트루다가 면역항암제 1차 치료제 급여화의 문을 열기는 했으나, 너무 좁은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는 "키트루다 외에도 1차 치료제로써 유용한 가치를 입증한 면역항암제들이 있고, 일부 약제는 우선순위에 배치할 수도 있으나 (실제 급여 확대는)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대호 교수는 "키트루다는 1차 치료 시 단독요법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임을 고려해 약가가 결정됐는데, 대부분의 면역항암제는 1차 치료제로 사용할 때 다른 약제와 병용요법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는 두 가지 이상의 약제를 사용하더라도 총 가격은 키트루다와 유사한 수준이어야 급여확대가 가능하다는 의미"라며 "결국 '적정 약가'를 위해선 면역항암제의 약가를 더 낮춰야 하는데 수익을 고려해야 하는 제약사 입장에선 약가를 낮추지 않으려 할 것이라, 다른 면역항암제의 급여 확대는 쉽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도 "키트루다 사례를 통해 확인됐지만, 면역항암제의 1차 치료제 급여확대가 어려운 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약가 협상이 힘들기 때문"이라며 "다른 면역항암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면역항암제는 폐암 외 여러 암 종에 효과가 있고, 한계가 있는 항암화학요법과 달리 유지요법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 장기 사용이 가능하다. 이를 고려해야 하기에 정부 입장에선 급여 확대에 신중할 수밖에 없으며, 급여 확대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의료계는 1차 급여의 좁은 문 때문에 또다시 피해를 보는 환자 없도록 정부가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진형 교수는 "키트루다가 1차 치료제로 급여가 확대되길 기다리는 동안 많은 환자가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고가약은 계속 나올 텐데, 고가 약이 나올 때마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환자의 약제 접근성 측면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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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림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