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괄수가제 개편에 업계 불만 증가...'의료 질 저하·의료기기산업 육성 저해'

- 포괄수가제 지침 개정이 의료기기 품목별 특징을 고려하지 않아 지불적정성 문제를 야기하고 신의료기술 개발·도입을 저해한다며 지불모형 개선 필요성을 제기
- 적절한 가치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신의료기술 개발과 공급을 저해할 수 있어

올해 신포괄수가제 지침 개정으로 2746개에 달하는 치료재료가 한번에 포괄수가에 묶이면서 산업계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의료기기 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내세우면서 오히려 발목을 잡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며, 포괄수가가 적용되면 결국 신의료기술이나 혁신기술은 외면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신포괄수가제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31일 협회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신포괄수가제 지침 개정이 의료기기 품목별 특징을 고려하지 않아 지불적정성 문제를 야기하고 신의료기술 개발·도입을 저해한다며 지불모형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신포괄수가제도는 포괄수가(기준수가+일당수가)와 행위별수가가 혼합된 지불제도다. 행위, 약제 및 치료재료를 포괄·비포괄항목으로 구분해 포괄항목은 포괄수가제로 지불하고, 비포괄항목은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해 지불하는 방식이다. 치료재료의 경우 총 2,746개 품목이 비포괄에서 포괄로, 871개 품목이 포괄에서 비포괄항목으로 재분류됐다.

행위별 수가제의 한계인 건강보험 재정 폭증을 차단하고 포괄수가제의 단점인 지불적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 포괄수가제 시범사업에서 도출된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 행위별 수가제와 포괄수가제를 혼합한 새로운 제도를 만든 셈이다.

이렇듯 두 수가 제도의 장단점을 조합하면서 신포괄수가 제도는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태다. 2009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시작한 이래 지금은 98개 의료기관이 이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제약 기업이나 의료기기 기업들도 크게 불만은 없던 상태였다. 비록 일부 치료재료가 포괄수가에 묶이기는 했지만 10만원 이상의 재료들은 행위별 수가제, 즉 비 포괄항목에 포함돼 별도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상쇄가 가능했던 이유다.


◆ 신의료기술 개발·도입 저해...지불모형 개선 필요성 제기
하지만 문제는 올 1월부터 시작됐다. 정부가 올해 지침 개정을 통해 포괄항목 치료재료에 대한 인정 폭을 대폭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개정된 신포괄수가제를 살펴보면 올해부터는 포괄/비 포괄의 구분 기준이 1인당 사용금액으로 변경되며 분류 기본 원칙이 20만원 이상의 치료재료로 지정됐다.

즉, 20만원 이하의 치료재료는 포괄수가로 일괄 포함되고 20만원을 넘어가는 재료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과거와 같이 비 포괄로 별도 청구가 가능해진 셈이다.

이러한 기준 변경으로 새롭게 비 포괄 항목에서 포괄 항목으로 넘어온 치료재료는 무려 2746개에 달한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별도 청구가 가능했던 치료재료 2746개를 이제는 청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의료기기 기업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포괄수가제도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같은 급격한 지침 개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에 나섰다.

황효정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포괄수가 위원장(메드트로닉 이사)은 "의료기관 입장에서 포괄수가를 적용받게 되면 당연스럽게 이에 들어가는 치료재료 원가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며 "어떤 제품을 쓰던 같은 돈을 받는 만큼 결국 포괄 폼목을 사용하지 않거나 줄이려 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협회는 관련해 총 3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 형평성의 측면
먼저 일부 치료재료의 경우 비포괄 중분류에 해당되더라도 유사 중분류가 포괄 영역이면 동일하게 포괄로 분류되는 맹점이 있다는 주장이다. 즉 1인당 사용금액이 20만 원 이상인 치료재료는 비포괄로 분류돼야하지만 규격·재질·형태가 다른 유사 중분류가 포괄이라는 이유로 동일하게 포괄로 분류된다는 것.

협회에 따르면, 175개(34개 중분류) 품목이 보험 상한가 20만 원을 초과하지만 유사항목 동일 분류에 따라 포괄로 분류됐다. 이는 각 품목별 성능 및 임상적 유용성에 따라 보험 상한가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품목별 특징을 고려하지 않은 비합리적인 구분으로 지불적정성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지정훈 의료기기산업협회 수가개선 분과장(스트라이커 상무)은 "품목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비합리적 구분으로 모두 포괄로 편입시킨다면 지불적정성을 저하시키는 동시에 형평성도 어긋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지혈제 중 20만원을 초과하는 '흡수성 체내용 지혈용품'은 의료기기 카테고리에 들어가 포괄로 들어가는 반면 동일한 기능의 약제는 보험상한가가 20만원을 넘어간다는 이유로 비포괄로 나눠지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약제는 동일 브랜드 내에서도 보험 상한가에 따라 20만 원 기준으로 포괄 및 비포괄로 구분된다는 점에서 치료재료와의 지불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 의료의 질 저하 우려
협회는 또한 의료의 질 저하를 우려했다. 진단 및 처치 정확도 향상 등 임상적 유용성을 인정받은 품목일지라도 포괄로 분류되면 현행 적용 중인 행위별 수가제에서의 별도산정 불가 품목과 동일하게 인식되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사용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정액수가’ 품목이 포괄로 분류됨에 따라 재사용 문제 또한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 신의료기술 개발·도입에도 악영향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 지침 개정이 신의료기술 개발·도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포괄 품목 비용은 진료비 평균금액이 기준수가에 반영되지만 기준수가 산출 시점이 3년 전이기 때문에 이후 등재된 치료재료 사용량은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인 만큼 임상에서의 신의료기술 도입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신기술을 기반으로 새롭게 도입된 제품은 상대적으로 고가이지만 포괄 영역으로 분류되는 제품의 경우 적절한 가치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신의료기술 개발과 공급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정부가 고부가가치 산업인 의료기기산업 육성을 위해 여러 방안을 시행하고 있지만 가치 보상 및 지불제도 개편 측면에서 오히려 산업 육성을 저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그간 치료재료 재평가·원가조사 등 수차례 의료기기 가격을 인하했으며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 및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 등 포괄수가제 운영에서 재정적 위험을 의료공급자로 이전하는 포괄 영역을 확대함에 따라 진보된 제품 및 신의료기술에 대한 적정 가치보상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포괄수가제가 신뢰받는 지불제도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의료행태를 적절하게 반영해 의료서비스 지불적정성이 확보돼야한다. 이는 합리적인 포괄영역 구분 및 신의료기술 별도 보상을 통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특히 “지불모형 개편 시 학계·의료계뿐만 아니라 지불제도 운영에서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산업계와 논의를 통해 모든 이해관계자가 수용하는 예측 가능한 지불제도가 돼야한다”며 “임상현장에 혼란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고 공급업체들의 재산권 내지 기업 활동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편돼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백영재 전문위원은 “의료기기나 치료재료는 업체가 다양하고 영세한 경우가 많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정책에 공급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제도가 1월부터 시행돼 3개월 정도가 지났고 업계에서는 많은 불만이 소리가 나오고 있어 제도를 설계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정부와 얘기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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