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운영성과의 귀속성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한 자가 누구인지 충분히 살펴야
- 병원 핵심 자산인 부지와 건물을 매수하고, 원내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주요 직책을 맡은 사람이 병원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주체
최근 사무장병원 의심 정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결이 나와 의료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의료기기업체 대표가 실질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대전의 한 병원과 관련한 민사소송에서 대법원은 주도적인 입장에서 병원 업무를 처리한 자가 누구인지를 기준으로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 사건 개요
일명 ‘D병원 사건’ 시작은 지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D병원을 막 개원했던 B씨는 메르스 사태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되던 중, B씨는 의료기기업체 C사와 접촉하게 된다. 판결문에 따르면 C사는 B씨에게 D병원의 운영자금을 대여해주겠다며 제안했고, 당장 자금이 필요했던 B씨는 이들과의 거래에 응하게 된다.
C사 요구사항은 D병원 운영권을 이들이 지정하는 자에게 양도하라는 것이었다. D병원 운영자금을 추가로 대출받기 위해선 의료법인으로 전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개설자 변경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B씨는 D병원의 부지 및 건물에 관해 2016년 7월29일 C사 사이에 매매대금을 총 410억원으로 정해 매매예약을 체결했다. 이후 B씨는 이후 11월18일 C사가 지정한 의사면허 취득자인 A씨와 자산양수도예약을 체결했다. 관련 내용은 D병원의 영업권, 상호와 관련된 권리, 기타 시설 및 장비 등 일체의 유·무형 자산을 넘긴다는 것이었다.
A씨는 2017년 6월12일 A씨에게 내용증명 우편으로 자산양수도예약에 따른 예약완결권을 행사한다는 통지를 했다. 이후 두 사람은 논의 끝에 병원 개설자 변경을 유예하고, 유예 기간 동안 둘이 공동 병원장으로서 병원을 함께 운영하기로 합의하며 A의 지분 99%, B의 지분 1%로하는 동업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A씨는 2018년 5월9일 D병원의 의료법인화가 개시됨에 따라 위 동업계약 제7조 제4호(해산통고, 타 의료기관의 병원 인수절차 개시)에 의거해 동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했고, B씨가 리베이트를 받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는 이유에 의해서도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재차했다.
자산양수도예약에 의하면 A씨가 예약완결 의사표시를 하는 즉시 자산양수도계약이 성립하고, 그에 따라 B씨는 D병원의 개설자를 A씨로 변경하는데 협조할 의무, 등기·등록 등이 필요한 양수도 자산을 A씨 명의로 이전하는데 협조할 의무, 시설과 장비 등을 A씨에게 인도하고 병원에서 퇴거할 의무가 있게 된다.
그러나 B씨는 이에 불응하고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 원고의 주장은?
B씨 주장에 따르면, 이후 C사는 D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관리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D병원장이 된 A씨는 일주일에 1~회 출근하며 결재 서류를 확인하는 정도의 업무만 수행했다. 병원 운영에 필요한 인사 발령 등 중요한 업무는 C사 임원이 도맡았다는 것이다. 또한 B씨는 A씨가 C사 대표이사의 딸로서 2016년 4월 갓 의사면허를 취득한 것을 지적했다. A씨가 불과 두 달을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다 왔기 때문에 경력 면에서도 병원을 운영할 만한 주체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이어 B씨는 "D병원이 사실상 ‘사무장병원’으로 운영되며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적법하게 운영되지 않는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개설자를 A씨로 변경한다는 내용의 계약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2심 재판부는 B씨의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을 종합해 보면, C사는 B씨에 대해 병원 운영자금으로 대여한 금원을 회수하기 위한 방편으로 병원을 인수할 제3자 지정권을 갖기로 하고 B씨도 이에 동의해 합의서가 작성됐다”며 “C사의 일련의 대여금 회수 과정을 놓고 이 사건 병원의 운영을 지배‧관리하고자 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진 항소심에서도 2심 재판부는 B씨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의료법 33조 2항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병원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운영성과의 귀속성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한 자가 누구인지 충분히 심리해 비의료인이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하는 경우는 아닌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가 일시적으로 병원 개설자 지위를 가질 의도로 자산양수도예약 등을 체결했다는 사정을 들어 병원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려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비의료인이 형식적으로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하기 위해 내세우는 명의인에 가까워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C사의 대표 인사들과 A씨의 관계, 의료인으로서 B씨의 경력 등을 고려할 때, A씨가 C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하기 위한 의료인 고용이나 명의대여와 달리 평가할 수 없다”며 “원심으로서는 병원의 시설과 인력의 충원·관리를 실제 누가 주도적으로 처리하는지 등을 충분히 심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은 “오히려 병원 핵심 자산인 부지와 건물을 매수하고, 원내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주요 직책인 기획실장 자리에 사람을 보낸 C사나 그 대표이사가 병원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주체라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병원 시설과 인력의 충원·관리를 실제 누가 주도적으로 처리하는지 등까지 충분히 심리했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원심은 위와 같은 사정만을 내세워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앞서 별도로 진행 중인 형사고소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D병원이 사실상 비의료인에 의해 운영‧관리(의료법 위반)되고 있다는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처분에 불복한 고소인 측은 항고했지만 서울고등검찰청 또한 이를 기각해, 해당 사건은 재항고돼 대검찰청에 계류 중이다.
이번 민사소송에서 대법원이 D병원의 의료법 위반 여부에 대해 검찰과는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대검찰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지훈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