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원격 비대면 진료’의 바람

- 의료계는 자칫 안전을 무시한 채 위험한 진료가 이뤄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
- 불필요한 의료 수요를 늘리고,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의료전달체계 위협의 가능성

최근들어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등 ‘비대면 사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원격의료 도입 관련 논의도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


▲ 본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하지만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의 원격의료행위만 허용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계는 진료의 편리성만 앞세우면 자칫 '안전'을 무시한 채 위험한 진료가 이뤄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팬데믹을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서 원격의료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모아지고 있는 만큼, 의료계도 무조건 반대 입장만 고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원격의료를 발전시키고 확대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가 정책과 규제, 법률, 재정, 보험체계, 의료시스템, 의료공급자·소비자, ICT 인프라, 정보 보안 등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분야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아직 전 세계적으로 의료 분야에서 원격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원격의료를 추진하는 국가들의 수준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전 세계 국가들이 원격의료 도입·추진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이유는 원격의료가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에 비하여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고 접근이 용이하며, 비용효과성까지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원격의료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국내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관심은 의료계나 국민 여론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정부와 산업계가 중심이 되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원격의료의 또 다른 이름인 ‘비대면 의료 서비스’의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의료체계의 패러다임을 만들고, 원격의료 관련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그 실효성과 현실성에는 아직도 의문점이 많고, 무리하게 추진되는 원격의료 정책에 의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최근까지의 원격의료 관련 연구들이 종합적으로 잘 정리된 OECD 원격의료 보고서를 분석해보면, 국내 원격의료 정책의 성패 및 문제점 등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별로 원격의료 관련 정책·법률이나 지불제도의 차이가 많기 때문에 일부 국가들의 원격의료 성과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특수 상황의 원격진료 및 원격의료와 관련한 일부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서비스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원격의료 관련 정책도 구체적이지 않아서 어떤 종류의 원격의료 서비스를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도 확정되지 않았으며, 원격의료 서비스의 수가와 지불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격의료는 다양한 방식과 분야가 있으나, 대부분 소규모 연구 단계이거나 특정 전문 분야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질환과 분야에서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여 좋은 성과를 보인 연구들이 있지만 그 결과를 일반화 시키는 것은 위험하고, 실제로 원격의료가 활성화된 국가들에서도 성급하게 확대시키지 못하고 있다.

‘원격의료의 비용효과성’이 우월할 것이라는 가설도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 국가별로 다양한 상황과 방식으로 원격의료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원격의료 서비스의 비용효과성에 관한 평가나 연구의 결과는 원격의료 행위가 평가되는 척도의 차이, 평가에 사용된 관점의 차이, 평가 기간 선택의 차이, 비교 대상의 차이 등을 고려할 때 일반화시키기 어렵다.

특히 원격의료는 불필요한 의료 수요를 늘릴 수 있고, 의료공급자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의료전달체계를 위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 높은 의료접근성, 낮은 의료 수가로 대표되는 비용효과성이 가장 높은 의료가 이루어지는 국가다. 이런 국내 상황에서 원격의료의 도입은 의료이용 옵션 추가에 불과해 기존 대면진료의 감소는 거의 없이 의료비 폭증만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원격의료의 특성상 젊고 건강한 환자에게 보다 쉽게 원격 상담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원격의료 수요가 증가하면 보험 재정이 고갈될 위험이 있다.

또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상급 의료기관에서도 제공할 수 있게 허용하면, 환자 유치 경쟁이 더욱 과열된다. 현실적으로 1차 의료기관은 상급 의료기관과의 경쟁을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에 이는 경영 악화로 인한 1차 의료기관의 폐업 증가로 이어지고, 결국 의료전달체계 붕괴와 함께 대면 진료의 의료접근성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게다가 정부 차원의 올바른 의료정책과 지불제도 정비, 원격의료 관련 기술 표준화, 정보 보안 강화, 법률 제정 등의 조치가 없으면 원격의료 추진은 반드시 실패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격의료 서비스를 하려면 서로 다른 기관 간에 개인 건강 정보를 교환해야 하며, 다른 의료기관의 종사자가 정보에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정보는 정신 건강이나 가정 학대 등 개인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민감한 개인 정보의 유출과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커지게 된다. 원격의료 서비스는 개인정보 보호가 확실히 담보되지 않으면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 만큼, 개인 정보 보안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오진 가능성이 높은 원격의료의 특성을 감안해 의료인의 책임 범위를 정하고, 오진 및 과실이 발생하였을 때 이를 대면진료와 차별화하는 법률의 제정은 원격의료 활성화 및 의료 제공자들의 부담 해소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안은 환자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비양심적 의료 행위를 조장할 우려도 있어 쉽게 만들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원격의료는 의료 역차별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높고, 지역간 의료 격차를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의료 이용에 있어 진입 장벽이 높은 저소득층과 저교육층, 만성질환이 많아 의료 이용량이 많지만 디지털 기기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 대면진료가 어려운 격오지에서 생활하는 농촌 지역 주민 등은 원격의료 서비스 이용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로 생각되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이들이 가장 원격의료를 이용하기 힘든 계층이기 때문이다.

원격의료 추진은 보건의료 종사자의 피로를 가중시키고, 노동 시장의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가능성도 높다. 원격의료 추진과 같은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는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저항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정책이 본래 추진되고자 하는 방향에서 벗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원격의료 추진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보건의료인 단체나 전문가 조직의 협조 없이는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수 밖에 없는데, 현재 국내 원격의료 추진 정책은 보건의료인 단체나 전문가 조직과의 협의 과정이 전무하기에 우려스럽다.

정부 주도의 하향식 원격의료 추진 정책 역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공급자와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사업의 필요성을 평가해야 한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하향식 접근은 위험하다. 정책을 결정하는 책임자나 기관이 특정한 계획을 추진할 때, 해당 계획이 환자와 의료 종사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실패할 위험이 높다. 반면 의료 제공자가 주도적으로 원격의료를 추진하고 관리하면, 의료의 질을 개선하고 환자에게 더욱 도움이 되는 사람 중심으로 원의료 서비스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환자와 의료 공급자 모두에 대한 디지털 관련 교육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원격의료 관련 자료와 결과들이 수시로 평가 및 피드백 받을 수 있어야 원격의료 정착이 가능하다. 원격의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의료진의 훈련과 자격 및 인증 등이 중요하다. OECD의 보건의료 종사자 중 약 3분의 1은 데이터 분석 지식이 부족하고 역량의 한계로 인해 디지털 관련 시스템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원격의료 추진에 꼭 필요한 디지털 교육 지원 계획과 유기적인 평가 및 피드백 시스템 구축과 같은 준비가 우리나라에 되어 있는지를 냉정히 평가해 보아야 한다.

원격의료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있어 대면진료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 지역 사회 감염의 상황에서는 가정과 직장을 포함하여 사람 사이의 접촉이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서 감염이 일어날 수 있기에 진료만 비대면으로 한다고 해서 전파를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최대한 빨리 환자를 찾아내고 환자와 밀접 접촉자를 격리하여 추가적인 전파를 막아야 하는데, 원격의료와 같은 비대면 의료는 진단이 지연되어 더 많은 환자와 접촉자를 양산하게 되고, 이는 감염병 확산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앞으로 감염병에 있어 원격의료가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주제는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아울러 원격의료는 의료 민영화의 단초가 될 가능성도 있다. 원격의료 산업에 통신사 등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의료가 지나치게 산업화되고, 이는 의료 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의료민영화는 사보험이 도입되는 계기가 되고, 전 국민 건강보험체계를 훼손하며, 공공의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의료 사보험이 등장하고, 공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은 위축돼 건강과 질병 치료에서 빈부격차가 심해질 것이란 논리다.

OECD 원격의료 보고서에서는 원격의료가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조건으로 세 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첫째, 원격의료는 궁극적으로 의료의 질을 개선하고 환자에게 분명한 혜택을 제공하는 서비스만 추진해야 하며, 환자와 지역 사회의 요구 및 필요성을 충족시켜야 한다. 둘째, 적절한 원격의료 이용을 장려하여 모범 사례가 전체 보건의료 시스템에 확산될 수 있도록 하면서, 이를 위해 정책 입안자들은 명확한 규정과 지침, 지속적인 자금 조달 및 지불 방안, 올바른 거버넌스 구축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학습 보건의료 시스템을 구축하여 이를 통한 평가 및 피드백이 가능하도록 하고, 새롭고 혁신적인 의료 모델에 대한 지원과 디지털 교육 지원 등을 통해서 원격의료의 이점을 여러 분야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이 세 가지 조건 중에서 우리나라가 충족시킬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의료에 있어서는 어떤 방식과 도구를 이용하든 그 대상은 결국 사람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있어 의료 서비스는 건강과 생명이 좌우될 수 있는 특수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 도입 시 항상 신중한 판단과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에 적합하고 올바른 의료 체계에 대한 진정성 있는 논의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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