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부, 재택·출퇴근 조정 등 권고... 대기업 실내 근무자 적용, 가전 설치·수리기사·택배 확답 못 받아 정상적 출근
- ‘악천후 업무 중단’ 사업주 자율에 달려 “날씨에 따른 노동자 보호 법제화하라” 요구
부산에 거주하는 가전 수리기사 A(34)씨는 태풍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본격적으로 남해안에 상륙한 6일에도 ‘정상출근’을 했다. 8시 20분까지 사무실로 출근을 한 뒤 9시 30분부터 고객 집을 방문하는 평상시 일정을 그대로 소화했다. 태풍의 피해가 집중된 아침 시간에만 3~4군데의 고객 집을 방문했다.
지난 4일 고용노동부는 태풍 힌남노에 대비하기 위해 사업장별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출퇴근 시간 조정 등을 적극 활용하도록 권고했다고 5일 밝혔다. 각 지방 노동청이 노동부 본부로부터 관련 내용이 담긴 공문을 전달받아 각 지역 담당 기업들에 유선 전화 등으로 이 사실을 안내했다. 이를 접한 삼성전자, SK이노베이션 등 일부 대기업들은 사무·생산직의 재택근무 전환과 출퇴근시간 조정을 신속하게 결정했다.
그러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노동부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해 직접 싸워야 했다. 가전제품 설치·수리기사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은 4일부터 출근시간 조정과 업무 불가 시 작업 중지, 태풍에 대비한 업무 매뉴얼 마련을 SK매직서비스, 바디프랜드 등 5개 가전업체에 요구했으나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택배기사들로 구성된 전국택배노동조합도 터미널에 있는 상품을 차량에 싣고 운반하는 ‘하차’ 업무를 6일 전면 중단시키라고 택배업체 5개 사(씨제이대한통운·우정사업본부·롯데글로벌로지스·한진·로젠)에 5일 요구했다. 태풍 속 차량 이동이 위험한데다 추석 명절을 앞둔 택배 물량이 특히 많아서다. 그러나 본사와의 합의에 실패해 대리점주마다 재량적으로 출근을 결정했다.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은 폭우, 태풍 등 악천후가 발생했을 때 작업을 ‘중지’하도록 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대를 재난에 따라 조정하는 조처는 법에 정해져 있지 않아, 사실상 사업주 자율에 맡겨져 있다. 그나마 코로나19를 계기로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일부 대기업들이 관련 제도를 활용하곤 있지만, 사측과 협상이 어려운 특수고용직·간접고용 노동자 등은 이런 조처를 기대할 수 없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매년 태풍 등 악천후 때마다 혼란이 반복되는데도 노동자 안전을 기업 자율에만 맡겨두는 것은 큰 문제”라며 “날씨에 따른 사업주의 노동자 보호 의무를 정부가 법에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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