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통보’ 수가협상, 의료계서 ‘무용론’ 확산... “깜깜이 협상 구조 문제”

- 내년도 의원급 수가인상률 역대 최저 1.6% 충격에 구조개선 요구 높아
- 공단 재정운영위에 의료계도 참여, 중개기구 신설 등 제안
- “협상이 결렬되면 계약이 불성립된 것으로 보고 귀결해야”

사실상 통보에 가까운 방식에 의료계에서 ‘수가 협상이 의미가 있느냐’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와 같은 수가 계약 구조에서는 협상하는 의미가 없다는 여론이다. 2024년도 의원급 수가 인상률이 유형별 수가협상이 시작된 이후 역대 최저치인 1.6% 인상에 그친 이후 더욱 거세지고 잇는 모양새다.



의료계는 공급자 단체를 제외한 채로 수가 인상 폭을 결정하는 추가소요재정분(밴드)을 결정하는 현행 구조를 가장 큰 개선사항으로 지적하고 있다. 밴드를 결정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는 가입자 단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표적인 공급자 단체인 대한의사협회 등은 참여할 수 없는 구조다.

이후 밴드를 토대로 유형별 수가협상이 시작되고, 이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공단 측이 제시한 수가 인상률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그대로 확정되며, 협상 결렬에 대한 페널티까지 부과하는 구조도 지적받고 있다. 이 구조가 사실상 협상이 아닌 통보와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12일 대한개원의협의회가 의협 지하강당에서 개최한 ‘불합리한 수가 협상 개선 방안’ 심포지엄에서 이같은 의료계 의견이 쏟아졌다. 대개협 김동석 회장은 “의료계가 아무런 대책 없이 내년에도 수가 협상에 끌려나간 뒤 한풀이 성명서만 발표하는 것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수가협상에서 의협 수가협상단장을 역임했던 김봉천 부회장도 “변화가 필요하다.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국 의료가 살아난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날 의료계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공단 재정운영위 공급자 참여, 협상 결렬 시 중재기구 신설 등을 요구했다.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해 수가계약구조 자체를 전면 뒤바꿀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의협 조정호 보험이사는 “공단 재정운영위가 결정한 밴드 내에서 공단이 발주한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유형별 순위와 재정 증가폭만 결정해 공급자에게 통보하는 구조”라며 “깜깜이 협상 구조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공단 재정운영위에 공급자 참여 위원을 보장하고 수가 협상 전 추가 소요재정 규모와 결정 근거를 공급자 단체에 먼저 안내해야 한다고도 꼬집었다. 또, 공단과 진행한 수가협상이 결렬될 경우 건정심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 중재할 수 있는 기구를 신설해 합의를 도출하고 건정심에서 이 합의안을 의결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중재기구에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표결을 통해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조 보험이사는 “협상이 결렬됐을 시 공단 재정운영위에서도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공급자 단체와 공단이 각각 마지막으로 제시한 수치에서 ±α 범위 내로 건정심에 안건을 상정하는 것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협상 과정 중에 공급자 단체와 재정운영위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논의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일본 사례를 제시하며 한국 수가 결정 구조에서 공급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우 원장에 따르면 한국 건정심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중앙사회보험의료협의회’(중의협)에는 의사 5명이 공급자 대표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공급자대표 8명 중 2명은 치과의사, 1명은 약사다. 반면 한국 건정심은 전체 위원 24명 중 3명만 의사라는 것이다.

우 연구원장은 “일본은 의사들이 수가를 결정한다고 이해해도 무리가 아니다. 소위에서도 여러 가지 세부 사항을 조사한 보고서를 만드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우리는 건정심에 의사가 3명만 참여하고 공단 재정운영위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수가계약제는 법적으로도 “계약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대한의원협회 장성환 법제이사는 “계약이란 당사자의 의사 합치를 의미한다. 혀상이 결렬되면 당사자의 의사 합치가 없으므로 계약은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귀결돼야 계약 본질에 부합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 법제이사는 또 “재정운영위에서 결정한 밴드를 한도로 유형별로 나눠먹기 협상을 유도해 수가를 결정하는 구조”라며 “원가 보전이 되지 않는 수가 구조가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장 법제이사는 이어 “협상이 결렬되면 당사자 의사 합치가 없으므로 계약은 성립되지 않은 것으로 귀결돼야 한다. 일방적으로 정한 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그대로 고시로 정하거나 페널티를 부과해 당초 제시한 인상률보다 낮추더라도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이같은 방향으로 건보법 개정을 촉구했다.

요양급여비는 원가에 적정 이윤을 부가한 것으로 산정하도록 수가 결정 체계를 바꾸고 재정운영위에 공급자 대표와 재정추계 전문가 참여를 보장하고 가입자 대표는 축소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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