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가항력 분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 한도 3000만 원 수준에 불과... 확대 요구 높아
- 산부인과의사회 “어느 직업군에서도 실수를 한다고 5억, 10억 배상하는 일 없다”
- 분만수가 상향, 무과실 분만사고에 보상금 10억 원으로 상향 요구
최근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에 의료진의 실수가 있었다며 12억 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의료진에게 지게 하는 판결이 내려지고, 응급제왕절개수술 이후 신생아가 사망하자 병원 측에 4억 원의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고액 배상 판결 기조가 이어지면서 산부인과계가 절망에 빠지고 있다.
이에 의료계는 불가항력 분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조해왔고, 정치권도 이에 응하면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으나 최대 보상금이 3000만 원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11일 성명을 통해 “분만이라는 본질적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의료행위에 있어서는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하더라도 산모, 태아 및 신생아의 사망과 뇌성마비 등의 의료사고를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누구나 일을 하면서 실수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느 직업군에서도 실수를 했다고 해서 5억 원, 10억 원을 배상할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의의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인해 받게 되는 가혹한 처벌 및 천문학적인 거액의 배상판결은 많은 현장의 분만의를 위축시켰고, 분만병원의 재정난을 가속화했다.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분만 의지를 꺾었다”며 “사고가 나기 전 먼저 산부인과를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통계청과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 수는 2020년 517곳에서 2022년 470곳으로 약 9%가 2년 사이에 감소했다. 10년 전인 2012년(739곳)에 비교하면 36.4%나 줄어든 셈이다. 분만실이 없는 시, 구, 군 등 지자체도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50곳이다.
또한 연도별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도 2020년 134명에서 2021년 124명, 2022년 102명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마저도 분만을 하는 산과가 아닌 암이나 내분비질환 등 부인과 전문의가 대다수이다.
의사회는 “연이은 재판부의 가혹한 판결은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진료실과 분만실을 지키며 환자와 국민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분만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엔 충분하고 종국에는 전국의 분만의들로 하여금 가능한 책임질 일이 없는 방어진료나 분만 중단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저수가로 인해 왜곡될 대로 왜곡되어 있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서 고단하게 버티고 있는 의사들에게 정부는 각종 악법을 퍼붓고 있고, 사법부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지 못한 죄를 의사에게 물어 천문학적인 거액의 배상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의사회는 분만수가 개선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회에 따르면 초산 제왕절개 분만비는 약 250만 원 수준인데 미국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1500만 원, 영국 약 1200만 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의사회의 2022년 자료에 의하면 2017년 의원급 산과 원가보존율 64.5%이고, 2018~2019년 54.9%, 2020년 53.7%, 2021년 52.9%으로 경영난이 심각했다.
이에 의사회는 “우리와 유사한 건강보험 구조를 가진 일본만 봐도 분만수가가 5~10배 높다. 같은 배상판결이 일본에서 발생했다면 수가가 10배 이상 되니 그만큼 병원의 부담이 덜하다. 우리나라의 분만수가도 미국기준으로 설정해 힘들더라도 보람과 보상을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3000만 원에 국한되어 있는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금도 10억 원으로 상향할 것을 주장했다. 국내의 경우 의료분쟁조정법을 통해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해서 정부가 산모에게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지만, 사고 이후 들어가는 막대한 개호비용(간호·간병비용)과 이미 분만사고 소송에서의 손해배상 금액이 10억대를 넘어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최대 3000만 원이라는 금액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은 분만 수가에 비해 고액 배상 판결은 불합리하다. 따라서 보상금의 상한을 현실에 맞게 10억원으로 대폭 상향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저출산 대책에 들어가는 연간 15조 원 예산 중 0.1%만 써도 기금은 충분히 해결하고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의사회는 안전한 진료환경 마련- 의료사고처리특례법 통과, 분만 의료과실에 대한 가이드라인 설정 협의를 촉구했다.
의사회가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산부인과 4년 차 전공의 82명·전임의 28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47%가 '전문의 취득 및 전임의 수련 이후 분만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 중 79%는 '분만 관련 의료사고 우려 및 발생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답했다.
의사회는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 평균 2명의 의사가 의료과실에 의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형사처벌을 받는 비율도 높다.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1심 형사재판을 받은 의료인은 354명이며 이중 67.5%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본은 15.8%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영국은 형사재판까지 넘어가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
의사회에 따르면 영국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과실치사죄로 형사재판을 받은 의사는 7명이었으며 이중 4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분만사고 소송에서 1심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만 해도 평균 4년이 걸렸고 최종심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7~10년이 걸린 경우도 있다. 재판 결과를 차치하고서라도 오랜 시간 동안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의사회는 조속히 의료사고처리특례법 통과시키고 민형사상 분만 시 의료과실에 대한 가이드라인 설정 협의를 복지부에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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