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료계와 정부 간의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많은 대학병원들이 재정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비상 운영자금으로 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이는 의료계 내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비영리법인이 사업의 본질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고정자산 취득 등에 사용하기 위해 적립하는 재원으로, 법인세법과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세금 혜택을 받으며 운영된다. 이 자금은 본래 의료기기 구입, 시설 확장, 연구 및 교육 활동 등에 사용될 목적으로 적립되지만, 현재 많은 병원들이 인건비와 같은 일상적인 운영 자금으로의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병원들이 현재 직면한 긴박한 재정적 어려움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장기화된 의정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경제적 타격으로 인해 많은 병원들이 운영 자금에 큰 압박을 받고 있다.

A대학병원의 병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일반 운영자금과 성격이 다르며, 대학 부속병원은 회계상 가용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라며, "이 자금을 목적사업이 아닌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려면 국세청의 한시적인 허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병원장은 "병원은 매우 노동집약적인 곳이며 대부분의 의료수입은 전문인력 인건비로 소모되기 때문에, 원가에 못 미치는 수가 구조 하에서 의료수입을 충분히 적립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사용하는 것이 당장의 위기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이는 병원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 기회를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더욱이 최근 병원 증축이나 분원 설립에 투자한 병원들은 인건비 등 일상적 운영자금으로 자금을 전용할 만큼의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B대학병원의 고위 관계자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병원 발전을 위해 저축하고 있는 돈이며, 지금은 이 돈을 다 풀어서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도 "이렇게 되면 결국 병원의 미래는 없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대학병원장을 지낸 C교수는 "대학병원들이 계속해서 적자를 보게 된다면, 교육과 연구는 망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교육 기관으로서의 병원의 기능마저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