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증원 갈등 속 의협의 역할과 한계
의료계, 정부 정책 대응 능력에 대한 비판 제기
의료정책 주도권 놓고 의협과 정부 간 불신 확대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정책 대응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의협이 직능단체로서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과 맞물려 있다.
충북의대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배장환 교수는 지난 3일 서울 용산역에서 열린 의료윤리연구회 모임에서 '의대 증원 사태-무너진 것과 쌓아야 할 것'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OECD 통계와 정부의 의대 증원 근거로 제시된 응급실 과밀화, 소아청소년과 진료 과부하, 지역병원 불신 문제의 원인이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잘못된 정부 정책임을 강조했다.
배 교수는 "우리나라는 증상 중심의 환자 배분 체계를 갖고 있어, 흉통으로 119를 불렀을 때 단순 늑골 골절부터 대동맥 박리까지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병원은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때만 환자를 받을 수 있어 결국 환자는 여러 병원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의사를 1만 명 늘려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아과 진료의 과부하 문제도 지적했다. "소아과 진료 과부하의 원인은 부모들이 특정 시간에만 몰리기 때문인데, 이는 병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제도적 문제 때문이다. 또한, 동네 의사들이 환자가 대학병원 진료를 원할 때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배 교수는 국회와 정치권에 "경증 환자는 대형병원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고, 상급종합병원 전원의 결정 주체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권의 배임으로 인해 지역의료가 무너진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대정부 협상에서 의협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도 표출됐다. 배 교수는 "현재 의협과 정부 간 물밑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대위원장이 대통령과 대담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아무도 모른다. 의협과 대전협 간 소통이 원활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단체행동 당시 의대생이었던 현재의 전공의들이 기성 의사들을 믿지 못하는 상황을 의협이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배 교수는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의협이 정부의 카운터파트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의협에 의료 정책을 논하고 이끌어 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의협이 자체적으로 국민과 정부를 설득할 만한 연구를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의협이 총파업을 예고하며 회원 투표를 실시한 것에 대해, 개원가뿐 아니라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에서 파업이 함께 이뤄져야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국민의 불편감이지만, 이번 정부는 그런 불편감을 인지할 능력이 부족하다"며 "의료 전달체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부분만의 파업은 의미가 없고, 전체의 30~40%가 파업해야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의협의 역량 문제가 아닌 의료계의 통일된 의견 부족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김충기 조교수는 "의협의 역량 문제보다는 의료계 내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의료계는 국민과 국가, 그리고 의료의 근본적 가치에 부합하는 방향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협이 정치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이 없으면 이러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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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