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해소 위한 119유료화·경증환자 전담클리닉 제안
의료사고 법적 보호 시급, 응급의료 행위 형사면책 법제화 강조
지역 응급의료 인프라 및 필수진료 분야 지원 대폭 확대 요구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현 응급의료체계가 전 정부의 성급한 정책 시행으로 인해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악화됐다며, 이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21대 대선 정책제안서를 최근 공개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현재의 응급의료체계가 수년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에 더해 지난 정부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밀어붙인 정책으로 인해 급속도로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특히, 젊은 의사들이 응급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고, 매력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는 것만이 응급의료체계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제안한 정책안은 크게 ▲응급의료체계 개선 ▲법적 지위 및 처우환경 개선 ▲지역 응급의료 인프라 강화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먼저,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해서는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독립적인 권한을 가진 '중앙응급의료청'으로 승격하고, 응급환자 전달체계를 명확히 재정립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응급실 뺑뺑이' 문제의 핵심 원인으로 꼽히는 경증 환자의 119 무상 이용을 지적하면서, 중증 환자는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고 경증 환자는 본인이 직접 비용을 내는 '119 유료화'를 도입할 것을 요청했다.
의사회는 다수의 경증 환자들이 응급상황이 아님에도 119를 이용해 정작 시급한 중증 응급환자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병원 간 환자 전원 체계 역시 이송업체가 유료로 운영되고 있지만, 서비스 질 관리의 어려움과 시간 지연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19가 병원 간 전원을 담당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 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적 지위와 처우환경 개선 부분에서는 응급의료진의 가장 큰 불안 요소인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불가피한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책임제를 확대하고, 응급의료 행위를 수행한 의료진이 형사 책임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신속히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의 응급의료 및 진료법(EMTALA)과 유사한 한국형 응급환자 진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를 충족한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형사면책 기준을 세우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더불어 응급실 내 폭력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가해자 처벌 강화와 보안인력의 상시 배치 의무화를 함께 요구했다.
이와 함께 응급의료 수당 인상과 교대 근무시간 표준화, 야간 근무 추가 인력 확보 등 현실적인 처우개선 대책도 제안했다. 이는 응급의료진의 업무 강도와 법적 책임 부담을 줄여 응급의료 현장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다.
마지막으로 지역 응급의료 인프라와 필수진료 분야에 대한 지원 강화를 강조했다. 의사회는 분만과 소아 진료 등 필수 의료 분야가 경제성을 이유로 의료진의 기피 대상이 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정신과, 안과, 피부과 등의 분야까지 지원율이 급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응급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서는 응급의학전문의가 부족해 타과 전문의나 일반의가 응급실을 지키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워킹그룹(Working Group)과 같은 인력풀을 구성해 의료진이 순환근무를 하도록 하고, 프리랜서 및 로컴 테넨스(Locom Tenens) 등 유연한 근무방식을 도입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또한 응급의료가 경제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지역일수록 공공 의료원의 역할과 책임을 더욱 확대하고, 정부 차원의 재정적 지원 및 취약지 응급의료 수가 가산 등을 통해 필수 의료 분야의 안정적인 유지가 가능하도록 실효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이번 정책제안이 단순히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장의 전문가들과 실질적으로 논의해 구체적인 정책과 법제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지금이 응급의료 시스템의 전면적 개혁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며, 더 늦기 전에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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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