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직장 내 괴롭힘법으로 충분…의료기관 특수성 무시한 과잉 규제”
중대재해처벌법 이어 또 다른 중복입법 논란…일선 병원 “책임만 떠넘긴다”
환자 안전과 직결된 의료서비스 저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
의료기관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별도 법률 제정 움직임에 병원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발의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안에 대해 의료현장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과 중복되는 이중 규제”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의료기관 내 종사자가 겪는 폭언, 폭행, 성희롱 등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피해자 치료 지원 ▲상시 고충처리기구 설치 ▲피해 구제 등 책임을 병원에 부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최대 3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미 근로기준법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중인 상황에서, 유사한 내용의 법을 또 만드는 것은 불필요한 이중 규제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병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의료진 간 위계와 팀워크가 치료 성과와 직결되기 때문에 일률적인 규제는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중소병원장은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사례 대부분은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도 충분히 관리 가능한 사안”이라며 “의료기관을 타 업종과 동일 선상에서 규제하려는 시도는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2019년부터 시행 중인 ‘태움 금지법’은 ▲욕설과 위협 ▲신체적 폭력 ▲부당한 인사 조치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사용자에게 피해자 보호 조치 및 취업규칙 반영 의무까지 부여하고 있다. 미이행 시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또는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이처럼 이미 규제 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사한 내용을 보건의료 전담법률에 반복 적용하는 것은 병원 운영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환자 생명과 직결된 의료현장에서 잦은 규제 변경은 오히려 환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이 같은 중복 규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당시에도 의료계는 수차례 반대 의견을 밝혀왔다. 의료기관은 특성상 수술 등 침습적 행위가 불가피하며, 완전한 예방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각종 재해를 법적으로 처벌하겠다는 접근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특히 중대재해법은 종사자뿐 아니라 이용자, 즉 환자에게 발생한 재해까지 포함하고 있어, B형간염이나 AIDS 같은 혈액전파성 질병이 연이어 발생할 경우 병원장에게도 형사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 위반 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과 손해배상 책임까지 지워진다.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병원은 이미 환자안전법, 의료법, 분쟁조정법 등 다수의 법률 아래 다양한 규제를 이행하고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의료기관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중복 규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병원장은 “의료행위는 특성상 긴급성과 고위험성이 동반되는데, 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법률이 계속 추가되면 결국 의료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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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