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사, 매년 735명 형사입건…“사법 리스크 과중, 의료 접근성 위협”

의료진 연간 3000건 분쟁 휘말려…소극·과잉 진료 악순환
선진국은 ‘중대한 과실’만 처벌…한국만 예외적 구조
전문가 “무과실 보상체계 도입해 필수의료 붕괴 막아야”

국내 의료진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훨씬 큰 형사적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사고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매년 평균 735명이 입건되고 있으며, 민사소송과 의료분쟁조정 절차까지 포함하면 연간 3000건 가까운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가 소극 진료와 과잉 진료를 유발해 결국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세대 서종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국회 공청회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매년 수백 명의 의사가 형사 입건되지만 실제로 기소돼 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약 40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유죄 판결을 받는 사례는 20명 안팎에 그쳤다. 실제 처벌 사례는 많지 않지만 수사와 송치 과정에서 겪는 법적·정신적 부담은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민사 영역에서도 의료분쟁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20년 이후 매년 700~900건의 1심 판결이 선고됐으며, 환자 청구가 받아들여지는 비율은 절반 수준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는 매년 약 2000건이 접수되고, 이 중 70% 정도가 조정 절차로 이어진다. 최근 5년간 개시된 7459건 중 약 5000건은 합의로 마무리됐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하다. 일본은 의료사고 형사 기소율이 2005년 52%에서 2015년 12%로 크게 낮아졌고, 중대한 과실이 있을 때만 형사 책임을 묻는다. 미국에서는 의료과오로 인한 형사책임 사례가 극히 드물며, 고의에 가까운 중대한 과실이 있을 때에만 처벌이 가능하다. 뉴질랜드는 국가가 운영하는 무과실 보상제도를 통해 환자 피해를 보상하며,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독일과 스위스 등 유럽도 환자 측이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해야 하고,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의사의 형사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일반적인 과실에도 형사입건이 가능해 의료진이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서 교수는 “형사처벌이 남발되면 필수의료 기피와 방어진료가 심화된다”며 “환자 보호는 민사 보상체계를 통해 보장하되, 형사 책임은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한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산부인과와 응급실처럼 위험 부담이 큰 분야에서 무과실 보상체계를 우선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가나 지자체가 특별 기금을 조성해 피해 환자를 지원하면 환자는 신속히 보상받을 수 있고, 의료진은 과도한 형사 리스크에서 벗어나 진료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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