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과정에서 환자의 정신질환 확인 시 적절한 보호조치 취해야...위반 시 손해배상 책임

- 입원 직전 자살 시도를 한 것을 알게 됐음에도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환자 보호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판단
- 금단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충분히 우려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추상적 방침만 세우고, 보호자로 하여금 상주하는 정도의 조치만 취한 것은위반

최근 법원에서는 환자의 정신질환 병력을 확인하고도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사유로 병원에 37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판결이 나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우울증 병력을 확인했음에도 이를 간과하고 적절한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18민사부(재판장 이원신)는 B대학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 병실에서 이탈해 약물과다복용으로 극단적 사망한 A씨 유가족이 병원 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에게 총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 사건 개요
A씨는 2017년 4월28일 소화불량을 주호소로 B병원 소화기내과에 내원했다. A씨는 '상세불명의 소화불량 및 상세불명의 기능성 위장장애'진단에 따른 약물치료를 받았다. 이후에도 거듭 소화불량을 주호소로 B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가 5월3일에는 기면, 어지러움을 주호소로 하여 다시 내원했다.

B병원 의료진은 A씨를 신경과 병동으로 입원조치했고, 진찰 과정에서 A씨가 8년 전부터 신경안정제를 복용해 왔음을 확인했다. 의료진은 입원초기평가 시행 후 A씨의 여러 증상에 대한 치료계획 일환으로 기존에 복용해왔던 항우울제 '플루옥세틴'의 복용중단을 결정하면서, 불안 증상이 심해질 경우 다시 복용토록 했다.

그러나 A씨는 5월8일 아침 8시쯤 입원실을 이탈했고, 예전부터 정신과 질환약제를 처방받아왔던 I의원에서 30일분의 항우울제, 항불안제, 항정신용제를 처방받았다. A씨는 이날 오후 12시56분쯤 대전 서구 소재 모텔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됐는데, 처방받은 약제 40알 정도를 한꺼번에 복용한 상태였다. A씨는 H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5월12일 약물중독으로 인한 횡문근육융해증으로 사망했다.


◆ 재판 과정
이에 A씨 유가족 측은 B병원의 운영자인 C학교법인을 상대로 A씨 사망에 관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고, 중재원은 2018년 1월9일 B병원에 6600여만원을 유족 측에 지급하라는 조정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C학교법인이 이에 불복해 유족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유가족 측은 병원 의료진이 A씨가 우울‧불안 증상으로 치료 중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정신질환 관련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항우울제를 중단하고, 또 병실을 이탈하도록 방치한 보호의무 소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이같은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먼저 항우울제를 중단한 것에 대해선 의학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소화불량을 비롯해 기면, 어지럼증과 같은 여러 증상의 원인을 ‘항우울제인 플루옥세틴을 포함한 여러 약제의 동시 복용 등에 따른 약물 부작용 또는 상호작용’으로 보고 복용 중단을 결정한 것은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입원한 A씨에 대한 적절한 보호조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료진은 A씨 입원 치료 중 극단적 시도 사실을 인지하게 됐으므로,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피고 측은 “당시 A씨의 정신병동 입원을 위해선 정신과 협진이 필수적이었는데, 극단적 선택 시도 사실을 알게 된 직후 휴일이 껴 있어 정신과 협진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란 취지로 항변했다.


◆ 임시방편 성격의 조치마저 시행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려워
그러나 재판부는 “과거 자살 시도를 인지했음에도 보호자들에게 24시간 병실 상주 필요성만 재차 주지시켰을 뿐, 그 외 어떠한 조치를 취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며 “5월5일부터 7일까진 주말이 포함된 연휴기간이어서 병원이 당직 체제로 운영된 탓에 A씨에 대한 정신과 협진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폐쇄병동 입원이 면밀한 평가 없이 결정될 수 없기도 했지만, 기존에 복용해왔던 항우울제 복용 재개나 A씨에 대한 관찰 강화 등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임시방편 성격의 조치마저 시행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병원에 손해배상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A씨의 치료 전력 및 전반적 건강 상태, 입원 경위와 전후 사정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병원 측 손해배상책임을 30%로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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