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중재원, 편파적 진료감정서 작성 논란...가재는 게 편?

- 의료분쟁을 조정해주는 역할하지만 의사 목소리가 과도하게 강력해
- 반대하는 위원 있으면 다른 위원으로 대체해서 진행... 규정 무시하는 경우 많아

8월 7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의료중재원의 실태에 대해 고발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은 의료분쟁에 대한 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10년 전 보건복지부가 설립한 공공기관이다. 조정 신청 비용이 아무리 비싸도 16만원 수준에, 절차도 120일 안에 끝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값싼 비용에 이른 시간 안에 결과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2년 전, 70세 박모 씨는 요양병원이 입원 중임에도 119에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신고했다. 119 근무자가 박모 씨가 입원 중이라는 것을 파악한 후 간호사에게 말하라고 거듭 이야기했으나 박 씨는 ‘병원 측이 기다리라고만 한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다 통화가 끊겼다. 박 씨는 통화가 끊긴 후에도 119를 눌렀던 흔적이 있으나 통화가 되지 않고 당일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이튿날 숨졌다.



발목 수술을 한 뒤 재활을 위해 요양병원을 입원한 지 두 달만이었다. 입원 당시 98%로 정상이었던 산소포화도가 사망 직전 85%까지 떨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상 범위를 10%나 밑도는 저산소증으로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호흡이 불가능했겠지만 이상하게도 요양병원의 기록에는 46일간 호흡수가 한결같이 20, 정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신체는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호흡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20으로 기재한 것은 허위라고 유가족들은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가족들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해 감정서를 신청했다. 심지어는 요양병원 측도 호흡수를 일일이 측정할 수 없었으며 육안으로만 확인한 후 관례로 20회씩 적었던 것이라고 인정했으나 의료중재원은 병원의 잘못이 쉽게 발견되는 기록을 보고도 “환자 진료에 부적절한 부분이 없어 보인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유가족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어 조정을 취하하고 문제의 요양병원을 고소했다. 경찰은 병원을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의료중재원은 유가족의 항의에도 “감정서의 한계가 존재하며 수사권이 없기 때문이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4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조 씨의 어머니는 부산의 한 병원에서 막힌 혈관을 뚫는 관상동맥중재술을 받았다. 이미 한번 했던 수술을 추가로 진행한 것이기도 했고, 당시 컨디션도 좋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으나, 막상 수술하니 통증을 비롯해 극심한 구토증세도 보였다. 병원 측은 2~3일 후면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어머니의 가슴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혈압도 정상치를 벗어나 결국 시술 나흘 만에 숨졌다.

이 역시 진료 기록 감정 결과, 의료진의 과실이 드러났다. 중재술을 받은 뒤 금성 심근경색 소견이 보였고, 혈액 검사에서도 심장근육이 손상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 보였다. 그러나 당시 어떤 처방도 없었으며, 상황이 악화해 중환자실로 옮겨졌을 때도 당직 의사가 상주하지 않을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의료중재원은 “심근경색은 1~3%의 환자에게서만 발생하고 불가항력적인 합병증에 해당한다”면서 “병원의 시술 후 경과 관찰과 응급 상황 발생 후 응급처치에 대해 부적절함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조 씨도 소송을 진행해 법원으로부터 “심근 흐름을 좋게 하는 약물 투여가 필요한 소견임에도 기록에 의하면 시행 기록이 없다”며 병원의 부적절한 조치를 인정받았으며 1심에서는 의료중재원의 감정서를 근거로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에서는 다른 대학병원의 감정서를 받아들여 병원으로부터 2100만 원을 배상받았다.

1심에서처럼 감정서 한 장이 의료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그런데도 공공기관의 감정서라기엔 편파적이고 부적절한 감정서들을 작성했다. 그 이유로 전문가들은 의료중재원의 구조 자체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의료중재원은 조정부와 감정부, 2개의 부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정 사건이 들어오면 감정부는 회의를 통해 감정서를 작성하고, 조정부는 이것을 근거로 결론을 낸다. 감정서를 작성할 때는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최종 책임자는 상임위원은 의사가 맡는다. 비상임위원 4명 중에서도 1명의 의사가 포함되어 총 의사 2명, 법조인 2명, 대학 교수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료중재원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의료인이 강력하게 주장하면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의료 전문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 점을 지적했다. 상임위원을 비롯한 의사 2명이 의견을 내면 나머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정서 작성을 하기 2주 전, 각 위원은 개별적으로 소견서를 작성해 이를 바탕으로 협의를 진행한다. 실제로 2017년에 급성담낭염으로 사망한 한 남성의 소견서에서는 A와 B, C 위원 모두 당남염에 대한 의심을 못해 추가 검사를 못한 병원 측의 과실을 지적했으나 최종감정서에는 ‘당남염 의심 가능성이 낮다’ 즉 병원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의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에 다른 의사가 판단하는 구조 자체가 무리한 설정이었다는 지적이다. 의료인이 아닌 다른 위원이 의료인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회의록에서 발언 자체가 사라지는 등 ‘가재는 게 편’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의료분쟁조정법에는 의사들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감정 위원회에서 반대 의견이 있을 경우 소수의 의견을 반드시 기재하게 되어 있으나 지난 5년간 작성된 감정서 약 8000건 중 소수 의견이 포함된 것은 32건에 불과하다. 사실상 없는 셈이다.

더 나아가 감정서 작성은 참석 위원들의 만장일치 서명이 있어야지만 가능하지만, 1명이 반대해서 서명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 사람을 빼고 다른 사람을 넣어 서명하는 등 있으나 마나한 규정으로 전락했다. 심지어는 백지 감정서에 위원들의 서명을 미리 받아놓기도 한다고 한다.

보다 못한 한 시민단체가 최근 의료중재원을 업무방해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의료중재원을 압수수색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스트레이트>의 취재요청에 의료중재원 측은 수사 중인 사항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면서도, 감정서 초안이 작성되면 위원들에게 전달하고, 작성된 내용에 대해 동의, 부동의를 선택한 뒤 의견을 반영, 수정 후 재승인을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의료중재원은 최근 개원 10년을 맞아 진행한 세미나에서 5년간 조정성공률이 86%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공률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이 기간 조정 신청 수는 1만 2293건이며, 조정 성립 건수는 4857건으로 단순 계산으로도 34%에 불과하지만, 의료중재원은 의료 사고 피해자가 사망 혹은 1급 장애 진단을 받지 않는 이상 의무적으로 조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서 일방적으로 거부한 사건은 조정 신청 수에서 빼버린 것이다. 이런 케이스는 5천 건이 넘는다. 의료중재원이 투입된 예산은 지난해 기준 220억이며, 감정부와 조정부의 상임위원의 연봉은 1억 3천만원이 넘는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