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수가’ 인상이 오히려 필수의료체계를 무너트릴 수도

- 충북대학교 한정호 기조실장 “특정 행위 수가 인상, 대학병원 인력 유출 가속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필수의료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특정과 수가를 전반적으로 인상하게 되면 오히려 대학병원 내의 필수‧응급의료 인력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괄적인 수가 인상으로 개원가나 2차 병원들의 수익이 높아지게 되면, ‘당직과 온콜(on-call)’에 지친 대학병원 의사들이 ‘고수익과 워라밸’을 쫓아 개원하거나 2차 병원으로 이직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온콜’이란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병원에 복귀해 진료할 수 있도록 병원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서 대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충북대병원 한정호 기조실장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하여 논의되고 있는 지원책에 대해서, 수가 인상으로 대학병원을 떠나 2차 병원으로 이직하는 의사들을 채용한 2차 병원들이 중증환자 진료와 24시간 응급체계 등에 나서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대학 병원들의 업무 과중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실장은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에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수가 인상이 이미 있었지만, 해당 과 수가를 전반적으로 인상하게 되면 오히려 24시간 필수의료 응급대응을 해야 하는 대학병원을 의사들이 기피해 인력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실장은 “흉부외과가 수가가 낮다는 것을 의료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수가를 인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흉부외과 관련 수가 중 가장 많이 인상된 것은 개원가와 관련이 깊은 하지정맥 관련 수가”라며 “외과도 위암‧대장암 수술보다 치질수가부터 인상됐다. 이런 수가들의 공통점으로 개원가에서 박리다매가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 살리기가 또 진행 중인데) 이번에도 이런저런 수가를 올려달라는 요구가 있다”며 “이번에는 특정 과에서 요구하는 수가가 아닌 진짜 필수‧응급의료에 필요한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수가 인상 시 학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너무 많이 반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에서는 각 학회에 (수가 인상이 필요한 부분을 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게 되는데 학회 내에서 여러 힘이 작용하면서 (인상을 요구하는) 회원 수가 많고 박리다매가 가능한 행위의 수가가 인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실장은 “필수의료 살리는 수가를 인상할 때 너무 학회 등의 이해관계에 휩쓸리면 안된다”며 “학회나 의료계 단체들도 이번에는 진짜 양심적으로 필수‧응급환자 진료를 위해 24시간 대기하고 고생하는 의사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대학병원에 도움이 되는 수가를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다. 대학병원에서 진짜 고생하는 의사들이 보상받고 보람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필수의료나 응급의료를 수행할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대학병원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개원하거나 로컬 의료기관으로 가는 것이 보수나 워라밸에 더 좋기 때문에 (필수의료 인력이) 없는 것”이라며 “회원 수가 많은 학회 의견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수가 적더라도 필수‧응급의료분야 수가가 올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병원에서 필수‧응급의료를 책임질 의료진이 개원이나 2차 병원으로의 이탈을 막기 위해 가장 시급한 수가로는 온콜과 당직수당을 꼽았다. 한 실장은 “대학병원 의사들은 병원이 아닌 집에서 온콜을 하고 있어도 수당이 없다. 온콜 대기하다 환자가 발생해 병원에 오면 그때 2만원 준다. 병원에 나와서 응급수술을 해도 수당 2만원이 전부”라며 “그것도 병원마다 50만원에서 150만원까지 한도가 있으며 심지어 세금까지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실장은 “전공이 80시간 근무제 후 전공의는 80시간 일하지만 교수들은 120시간 일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당직수당도 이런 상황이다. 이러니 전공의들이 교수 안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라며 “전공의 진료권과 수련권은 보호받는데 교수들은 누가 보호해주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이 교수직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 현장에서) 응급의학과와 소화기내과가 인기가 높아진다. 응급의학과는 로컬에서 수요가 있고 소화기내과는 (내시경수가 인상으로 늘어난) 로컬 검진센터에서 보수를 높여 데려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실장은 “(필수의료 관련 이슈가 터져 특정과 수가를 인상해주는) 보상체계가 가동될 때마다 (개원가나 2차 병원들 상황이 좋아져) 대학교수들이 개원가나 로컬 의료기관으로 빠져나가는 빌미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실장은 “실제 대학병원들에서는 (이번에도) 교수들 이탈이 있을까 초비상 긴장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에 한 실장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수가 보상체계는 지금처럼 (수가를) 전반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병원에서 필수의료환자나 응급환자 진료를 위해 24시간 대기하는 의사들을 위해 온콜 수당, 당직 수당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한 실장은 “정책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찾는 것이 정부와 공무원의 역할”이라며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으로) 필수의료 살리기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진짜 고생하는 의사들이 대우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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