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으로 비영어권 최초로 에미상 드라마 부문의 감독상을 차지한 황동혁(51) 감독의 시작이 지금처럼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통장 잔고가 만원이 채 안 되던 시절인 2008년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가 10여 년 뒤 드라마로 제작된 것으로도 모자라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는 황동혁 감독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한국 배우들이 한국말로 연기했던 이 드라마는 전 세계에서 1억 1100만가구(2021년 넷플릭스 집계)가 시청해 글로벌 히트작에 등극하고 할리우드의 역사까지 바꿨다. 미국 방송계에서 음악계의 그래미상, 영화계의 오스카상 정도의 권위를 가진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작품이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에서 후보 및 수상한 것은 에미상의 74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국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과 비교하면 황동혁 감독은 무명에 가까웠다. ‘오징어게임’ 전까지는 액션과 스릴러 같은 장르물 이력도 없었다. 미국 LA 남가주대(USC) 영화학과 석사과정 당시 재미교포 배우 칼 윤과 함께 만든 한국인 입양아의 단편 이야기를 담은 ‘미라클 마일’이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된 것이 유일한 국제 이력 수준이다.
‘도가니’(2011)와 같은 실화 소재 사회파 영화로 시작한 그의 감독 인생은 코미디 영화 ‘수상한 그녀’(2014)를 거쳐 병차호란을 배경으로 한 정통 사극 ‘남한산성’(2017)로 이어졌다. 그의 연출 색을 간략하게 정의한다면 ‘사람 냄새 풍기는 하이 콘셉트의 영화’이다. 조금 쉽게 풀이하자면, 친숙한 소재를 신선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변주해 대중성을 높인 상업 기획 영화이다. 할리우드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과 유사하다.
스필버그가 황 감독의 ‘오징어게임’을 보고는 “당신의 뇌를 훔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25개의 단어 이내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좋은 영화이다”고 말하는 스필버그의 수칙에 대부분 부합하는 황동혁 감독은 이번 수상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그의 경쟁력을 입증해냈다.
낯선 설정의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한 데는 불공정 사회에 대한 비판이 한몫했다. 시대적 함의는 그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다.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장애인 학교의 학대 실화를 파헤친 영화 ‘도가니’는 사건 재조사 요구가 빗발치는 등 국민적 공분을 끌어냈다.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특례법 개정안, 일명 ‘도가니법’ 제정의 계기가 됐다.
지난달 미국 매체 데드라인 인터뷰에서 황 감독은 “20년 전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유명 감독이 되려면 영어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더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어떤 언어든 전 세계 사람이 공감할 주제와 메시지가 중심이라면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본을 집필 중인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무대를 세계로 확장해 더 많은 게임을 보여줄 예정이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황 감독은 차기작으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노인 죽이기 클럽’을 준비한다. 그는 “또 하나의 논쟁적 영화, ‘오징어 게임’보다 폭력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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