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44명 숨졌는데 중대재해법 재판 중 2건 뿐... ‘바늘구멍’

- 지난해 1월 27일 도입 후 연말까지 작업현장서 노동자 644명 숨져
- 11개 기소 사건 중 2건만 진행 중... “수사가 면밀한 것은 좋지만 기업에 잘못된 신호 줄수도”
- “중대 재해 발생 시 즉시 작업중지를 명령하는 등의 행정처분 동반되어야 법 취지에 맞아”

지난해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법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지난해 연말까지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모두 644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 중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입건된 것은 229건에 그치며, 노동부는 자체 조사를 거쳐 34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 역시 이 가운데 11건만을 재판에 넘겼다. 현장에서 숨을 거둔 노동자들의 숫자에는 큰 변화가 없음에도, 입법 취지를 현실에 관철시켜야 할 수사와 기소의 처분은 여전히 바늘구멍인 셈이다.


▲ 출처 : 동아일보

재판에 넘겨진 11건마저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재판에 넘겨진 사건 중 창원지법 마산지원이 진행하고 있는 한국제강 노동자 1명의 깔림 사고 사건이 다음달 선고를 앞두고 있고 창원지법에서 두성산업 화학물질 중독 사건이 중인 신문을 기다리고 있을 뿐, 이 2건을 제외한 나머지 9건의 경우 첫 기일조차 열리지 않은 상태이다.

사업주 처벌에 방점을 찍고 있는 해당 법의 특성을 고려하면, 형사 절차 진행으 늦어지는 것은 어느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은 명백하다. 안전보건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의 부작위와 중대재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법의 구조 탓에 수사의 난이도가 높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이유로 논란 끝에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느슨하게 적용된다면 기업들에게 잘못된 시그널로 오인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가 면밀하게 이뤄지는 것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기업들에게 ‘어차피 수사, 재판까지 오래 걸리니 겁낼 필요 없는 법’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는 상황이기도 하다”며 “절차 진행 속도를 올릴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는 대기업에 유독 느슨하게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현황을 보면 더 커진다. 지난해 11월 초 기준, 대기업집단이나 공공부문 등 ‘괜찮은 일자리’에서 벌어진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69건 가운데,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단 2건에 불과하고 그나마 기소된 사건은 전무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사건의 복잡성과 대형 로펌의 적극적인 변호”를 그 이유로 꼽는다. 대기업과 공공기관들은 법 시행을 앞두고 ‘안전보건조치’ 등 외형적 준비를 해둔 경우가 많았고, 대형 로펌 등이 준비한 방어논리를 돌파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는 “지금과 같은 수사와 재판이 반복될 경우, 노동자 안전은 확보되지 않고, 대형 로펌만 돈을 벌고,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법 시행 이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사업주 형사 처벌과 더불어 강력한 경제벌을 내리거나, 중대재해 발생시 즉시 작업중지를 명령해 영업을 정지하는 등의 행정처분을 병행해 법 취지를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연되는 수사와 재판 절차에 중대재해 피해자 유족들의 가슴에 남겨진 상흔은 더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남편 이동우씨와 함께 설 명절을 보냈던 권금희씨는 올해 설 남편을 위한 차롓상을 준비했다. 아빠를 한번도 보지 못한 태어난지 100여일된 아기와 함께였다.

권씨가 임신 3개월째던 지난해 3월, 남편 이씨는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보수작업을 하던 중 추락 방지용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졌다. 현장엔 안전담장자가 배치되지 않았고, 크레인 전원을 차단해야 하는 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잘못이 명백했기에 금방 기소될 줄 알았지만, 사고 후 10개월이 되도록 이씨 사건은 아직 ‘수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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